희곡 교정 노트
희곡 교정의 핵심은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를 줄이고, 캐릭터의 개성과 말맛을 살리는 것입니다.
희곡 편집자로 일하며 '덜어 내기'의 미학을 몸소 알아 가는 중입니다.
불필요한 소유격이나 반복 어휘, 한국어와 어긋나는 문장 구조만 덜어 내도
대사는 훨씬 더 자연스럽고 몰입하기 좋은 호흡을 갖게 됩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와 달리, 대사의 리듬을 살리기 위한 수정은
시대나 장르 불문하고 적용할 수 있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만큼 희곡마다, 캐릭터마다, 말투마다 다른 선택이 필요하죠.
처음 희곡 편집을 맡은 이후
새 작품을 만날 때마다 기본적으로 확인하는 기준들을 조금씩 다듬어 왔습니다.
희곡 교정은 해 볼수록 더 까다롭고, 더 재밌는 작업입니다. ❐
1. ‘아니요’와 ‘아니오’
'아니요'는 독립 감탄사로 부정 대답에 쓰며, 열거 중간의 '아니요'는 연결어미 '-요' 결합형이라 뒤 문장이 이어져야 합니다. '아니오'는 하오체 종결형으로 문장을 마무리할 때 쓰며 종결 자리에는 '-요'를 쓰지 않습니다.
예) 아니요, 괜찮습니다. / 그건 아니오. / 이것은 배도 아니요, 사과도 아니다.
2. -어하다/-해하다/-워하다
형용사 뒤에 오는 '-어하다'는 붙여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반면 동사 뒤에 오는 '-어 하다'는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나, 관용적으로 붙여 쓰는 경우도 허용됩니다.
다만 ‘즐겨 하다’는 본용언 '하다'가 결합한 형태이므로 반드시 띄어 써야 합니다.
또한 '-아/-어 하다'가 구에 결합할 때는 띄어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예) 마음에 들어 하다(○) / 마음에 들어하다(×)
3. ‘그리고 나서’ × / ‘그러고 나서’ ○ · ‘그리고는’ × / ‘그러고는’ ○
접속부사 '그리고' 뒤엔 보조동사가 오지 않습니다. 접속부사 뒤에 조사 '는'도 붙지 않으므로 '그러고는'이 적절합니다.
예) 저녁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 산책을 갔다. / 그러고는 문을 닫았다.
4. ‘남짓/여’ vs ‘가량/약/정도/쯤/안팎’
'남짓·여'는 기준 초과에만, '가량·약·정도·쯤·안팎'은 기준 위아래 모두에 씁니다. "약 10일 남짓/정도"처럼 중복은 피합니다.
예) 10일 남짓 / 약 10일 / 10일 정도
5. ‘않은데’ → ‘않는데’
'않다'는 앞에 쓰인 용언의 품사를 따릅니다. '않다'가 보조 동사로 현재 시제이면 관형형 '-는'이 옵니다. 구어 습관 때문에 '-은'으로 잘못 쓰기 쉬우니 주의합니다.
예) 전혀 웃기지도 않는데(○) / 전혀 웃기지도 않은데(×) / 예쁘지도 않은데 (○)
6. 동사/형용사 구별: ‘당황하다·설레다·신나다’
의미가 상태적이어도 품사는 동사입니다. '-해하다' 형태로 잘못 쓰지 않도록 품사 구별에 주의합니다.
'당황하다'가 이미 동사이기 때문에 '당황해하다'처럼 사용할 이유가 없다.
7. 격식/비격식 혼용 주의 ❐
'-게'는 해라체(비격식)의 명령형, '-리다'는 하오체(격식)의 종결형으로 서로 격식이 다릅니다. 한 문장에 격식체와 비격식체를 섞으면 어색하므로 문체를 통일합니다.
예) 아니다, 저자의 고환은 살려 두게. 역병처럼 빠르게 목숨을 앗아 가리다. -> 아니다, 저자의 고환은 살려 두게. 역병처럼 빠르게 목숨을 앗아가리라. [point] '해라'할 자리에 쓰여, 상황에 대한 화자의 추측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인 '-리라'로 수정합니다.
8. ‘-ㄹ지’ vs ‘줄’
맥락에 따라 대체할 수도 있지만 대체하면 뜻이 달라집니다. '줄'은 방법· 사실·셈속의 실상을 가리키는 의존 명사(확정/경험), '-ㄹ지'는 막연한 추측·의문(미정)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 속일 줄은 몰랐다 / 속일지 모른다
9. ‘에’ / ‘에서’
'에'는 처소 지시, '에서'는 동작의 발생 장소입니다. 의미 차이에 따라 선택합니다.
예) 냉장고에 우유가 있다 /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냈다
10. ‘자문을 구하다’ × / ‘자문하다’ ○
'자문' 자체가 전문가에게 묻는 행위를 뜻하므로 '자문하다'가 간결하고 정확합니다.
11. ‘-으려고’ / ‘-기 위해서’
'-으려고'는 화자의 의도·욕망을 표현할 때, '-기 위해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행동을 표현할 때 자연스럽습니다. '-기 위해서'는 특히 청유문· 명령문· 미래 시제·당위를 나타내는 표현과 어울릴 수 있습니다.
예) 일찍 일어나려고 알람을 맞췄다. / 공연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합시다.
12. 불필요한 ‘-시키다’
'독살하다·회복하다·향상하다'처럼 이미 사동 의미가 있는 단어에 '-시키다'를 덧붙이지 않습니다.
13. ‘그’ 남용 줄이기
실용문에서는 지시대명사 ‘그’가 군더더기가 되기 쉽습니다. 맥락이 분명하면 생략해 문장을 응축합니다.
예) 문장 구조가 다르다.그의미 또한 다르다. → 문장 구조가 다르다. 의미 또한 다르다.
14. 음식 이름 붙여쓰기 ❐
마틴 가끔은 잠들 때까지 텔레비전을 보도록 소파에 내버려둬. 그러면 안아서 옮길 수 있어. 자, 가자 캐시, 새 아이스크림을 먹자.
캐시 초코소스와 너트 먹을래.
빅토리아 엄마, 아이스크림 어때요?
— <클라우드 나인>, 카릴 처칠
음식의 재료, 조리 방식을 포함한 음식명은 모두 붙여 씁니다. '칠리소스', '크림소스'처럼 소스 자체의 명칭으로 쓰일 때는 붙여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칠리소스'와 '크림소스'는 사전에 등재된 단어입니다. 반면 '꼬치(의) 소스', '덮밥(의) 소스'처럼 일반 명사에 '소스'가 결합한 표현은 한 단어로 굳어진 형태가 아니므로 띄어 씁니다.
16. ‘그렇다’ / ‘그러다’
형용사 내용엔 ‘그렇다’, 동사 내용엔 ‘그러다’를 씁니다. 물음에도 동일하게 적용합니다.
예) “날씨 좋죠?”—“그렇죠.” / “같이 갈래요?”—“그러죠.”
17. 외래어 표기 ‘섬네일’
thumbnail의 표기는 ‘섬네일’이 표준이며 된소리를 쓰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다듬은말 ‘마중 그림’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18. 사이시옷 규칙과 예외
고유어(+고유어/한자어) 합성어에서 앞말 모음 끝 & 뒷말 된소리면 사이시옷. 외래어 혼성(호프집)에는 쓰지 않습니다. 예외 6어: 곳간·셋방·숫자·찻간·툇간·횟수.
19. ‘지그시’ / ‘지긋이’
‘지그시’는 힘을 주거나 참고 견딜 때, ‘지긋이’는 나이 많음/끈덕짐의 어감에 씁니다.
예) 아픔을 지그시 참다 / 나이가 지긋이 들어 보인다
20. ‘썩이다’ / ‘썩히다’
‘썩이다’는 마음을 괴롭게 함, ‘썩히다’는 썩게 하거나 방치(재능 포함). 의미에 맞춰 구별합니다.
예) 부모 속을 썩이지 마라 / 재능을 썩히지 마라
21. ‘빨강색’보다 ‘빨간색/빨강’
‘빨강’ 자체가 색을 뜻하므로 ‘빨강색’은 중복입니다. 관형형은 ‘빨간색’이 자연스럽고, ‘빨갛다’는 ㅎ불규칙을 따릅니다.
예) 빨간색 가방 / 빨강 구두 / 빨개, 빨가니
22. ‘-대’ / ‘-데’
‘-대’는 전언(간접), ‘-데’는 화자의 직접 경험·회상 진술입니다. 글에서는 ‘더라/던데’로 분명히 적는 편이 안전합니다.
예) 멋있대 / 내가 봤데(구어) → ‘더라/던데’ 권장
23. 높임과 격식(종결어미 선택)
높임(존댓/반말)과 격식(격식/비격식)은 다른 축입니다. 존댓말과 반말의 혼용은 특히 어색하므로 장면·화자에 맞춰 일관되게 씁니다.
24. ‘시작하다’ 남용
전환점 강조가 아니라면 생략해도 자연스러운지 점검합니다. 시작이 내포된 동사·상태에 억지로 붙이면 장황해집니다.
25. 피동형/과거형 구별(치다·치이다/끼다·끼이다)
‘치었다=쳤다’, ‘치이었다=치였다’처럼 능·피동과 활용을 구별합니다. ‘끼다/끼이다’도 같은 원리입니다.
예) 차에 치였다 / 문틈에 손이 끼였다
26. ‘붇다’ / ‘불다’ 활용
‘붇다’(부피↑)는 붇고-붇는-불어-불으니-불은-불어서-붇겠다. ‘불다’(바람)는 불고-부는-불어-부니-분-불어서-불겠다로 활용합니다.
예) 라면이 다 붇겠다 / 바람이 세게 분다
27. 마침표·쉼표 쓰기
연·월·일 표기는 ‘2025.4.2.’로 ‘일’ 뒤 마침표 포함. 3·1 운동은 숫자 사이 점 권장. ‘즉/곧’은 앞말 다음에 쉼표로 받습니다.
예) 사람은 그가 하는 말, 즉 언어 습관을 보면 안다.
28. 희곡의 큰따옴표
대사 속 인용·극화·유머 효과에 유용합니다. ‘말 속의 말’을 분명하게 드러내 몰입을 돕습니다.
29. ‘찾아보다’ / ‘찾아 보다’
등재된 본용언 의미(검토/조사/만남)는 붙임. 실제로 뒤지고 살피는 동작+보조용언 ‘보다’는 띄움입니다.
예) 뜻이 궁금하면 사전을 찾아봐라. / 핸드폰 찾아 봐.
30. 군더더기 ‘있었다’ 덜기
진행형 남발은 주술 호응을 흐립니다. 완료·단정형으로 바꾸면 문장이 선명해집니다.
예) 이어지고 있었다→이어졌다 /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걱정하지 않았다
31. ‘-을 하다’ vs ‘-하다’
명사목적어+하다(선택의 뉘앙스)와 합성동사 ‘-하다’(행위 자체 단정)를 구별합니다. 문장의 초점에 맞게 고릅니다.
예) 그림으로 장식을 했다 / 그림으로 장식했다
32. 사전 ‘일러두기’ 읽기
기호(▼, ←, ^ 등)와 품사·활용 정보는 교정 정확도를 높입니다. 표제어 등재 여부로 붙임/띄움 판단도 가능합니다.
33. 줄임말의 원리
‘금세’, ‘외려/되레’, ‘어떡해’ 등은 역사적·음운적 변화를 따릅니다. 받침 ㄱ·ㄷ·ㅂ + ‘하지’→‘지’ 패턴을 기억해 두세요.
예) 깨끗하지→깨끗지 / 생각하지→생각지
34. ‘내 자신’이 아닌 ‘나 자신’
‘내’는 ‘나의’의 준말이므로 ‘나 자신’이 자연스럽습니다. ‘제 자신’도 동일 원리가 적용됩니다.
35. 수 표현·단위 띄어쓰기
의존명사 단위는 띄움(오십 킬로그램). 숫자·기호 결합은 붙임(600그램·600g). 숫자 표기는 만 단위로 끊어 읽습니다.
36. ‘안/잘/못’ 계열 구별
‘안되다/안 되다’, ‘잘되다/잘 되다’, ‘못되다/못 되다’, ‘못하다/못 하다’는 의미에 따라 붙임/띄움을 구별합니다. ‘잘못하다’와 ‘잘 못하다’도 의미가 다릅니다.
37. ‘-데 반해’ vs ‘-데 비해’
단순 비교는 ‘-데 비해’, 상반 대비(반대 성질)는 ‘-데 반해’가 자연스럽습니다. 문맥에 맞춰 고릅니다.
예) 평균 A인 데 비해 B는 높다 / 그는 냉정한데 반해 아내는 다정하다
38. 가운뎃점(·) 남용 주의
어원·한자가 다른 낱말을 임의로 묶지 않습니다(제정·개정처럼 한자가 다른 경우는 줄여 쓰기 부적절). 모호하면 풀어 쓰기가 안전합니다.
39. ‘-ㄴ바’(어미) / ‘바’(의존 명사)
어미 ‘-ㄴ바’는 붙이고, 의존 명사 ‘바’는 띄웁니다. 뒤에 조사가 붙으면 의존 명사로 봅니다.
예) 친구인바 / 공헌하는 바가 크다
40. “친구들과 만남이 예정돼 있다”가 어색한 이유
불필요한 명사화로 문장이 번거롭습니다. “친구들과 만난다/만나기로 했다”처럼 동사 연결이 자연스럽고, ‘과/와’는 서술어와 호응시킵니다.
41. ‘뿌예지다’ / ‘뿌얘지다’
표준은 ‘뿌예지다’, ‘뿌얘지다’는 비표준입니다. 모음조화형(하얘지다/허예지다 등)도 함께 기억합니다.
42. 불필요한 1인칭 반복 줄이기
화자가 명백한 맥락에서는 ‘내/나의’ 반복을 덜어 리듬을 가볍게 합니다. 의미는 유지하되 군더더기를 제거합니다.
43. ‘아니라’의 대등 대비
‘아니라’는 양 항이 대등할 때 씁니다. ‘A 아닌 B’는 포괄 대비가 되어 어색할 수 있으니 문맥을 점검합니다.
예) 그건 몽룡이가 한 게 아니라 춘향이가 했다.
44. 상태/동작의 통일
한 문장 안의 대비는 품사 성격을 맞춰 자연스럽게 구성합니다(상태↔상태, 동작↔동작).
예) 낮엔 무덥고 밤엔 선선하다 / 낮엔 무더워지고 밤엔 선선해진다
45. ‘-어하다’ 붙임/띄움 정리
형용사 뒤 ‘-어하다’는 보통 붙입니다. 다만 구(먹고 싶다/마음에 들다/내키지 않다)+‘-어 하다’는 띄우고, ‘즐겨 하다’는 본용언 결합이므로 띄웁니다.
예) 먹고 싶어 하다(○) / 즐겨 하다(○)
46. ‘달다(다오/줘라/주라)’
‘달다’는 명령형 ‘달라/다오’로 씁니다. 실제 용례에서는 ‘다오’ 자리에 ‘줘라/주라’가 관용적으로 대체됩니다(화계·문맥 고려).
47. 표준국어대사전 최신 변경 메모
‘듣다못하다’ ‘턱끝’ ‘만자무늬’ 추가. 의존 명사 ‘줄’ 뜻풀이에 ‘사실’이 보강되어 쓰임 구별이 명확해졌습니다.
48. ‘훨씬 큰일’ / ‘훨씬 큰 일’
부사 ‘훨씬’이 형용사 ‘크다’를 수식하므로 ‘훨씬 큰’ + ‘일’ → ‘훨씬 큰 일’이 맞습니다.
49. ‘빗겨 가다’는 비표준
의도에 따라 ‘비켜 가다’(피함) 또는 ‘비껴가다’(비스듬히 지나감)로 고칩니다. 비유에는 ‘비켜나다’도 가능.
예) 공이 골대를 살짝 비껴갔다 / 사람들을 비켜 가다
50. ‘~적’ 표현 줄이기
과다 사용은 문장을 추상적·장황하게 만듭니다. “정책적 방향”→“정책 방향”, “사회적 영향”→“사회 영향/사회에 미치는 영향”처럼 구체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