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腹속話말術〉 아카이브 | 리뷰

침묵의 사후

- 애도하는 몸의 반향, 〈뱃腹속話말術〉


김지승 작가 



유령은 타자의 비밀이 우리 안에 남긴 공백이다 (…) 

언어화할 수 없는 사실을 묻어 버린 자리 (…) 

마치 복화술사처럼, 마치 내면의 이방인처럼.1 




그 원(圓)은 그의 이른 죽음으로부터 왔다.


침묵을 깨는 동시에 침묵을 낳는 소리. 공연은 “쉬…” 하는 짧고 분명한 수행적 음성으로 시작된다. 검지를 세워 입술 가까이 대고 내는, 금지와 금기의 명령이 다양한 언어들로 제각각 발음되고 뒤섞인다. 다음은 금기의 지시어로부터, 죽음으로부터, 44년 된 소문으로부터 복화(腹話)되어 온 몸들이 도착할 차례다. “먼 곳으로부터 온” 그들은 “어떤 파헤쳐야 할 이식”2으로 당도한다. 한 시간이 다른 시간 속으로 침입하듯이. 침묵을 깨는 소리와 낳는 소리가 하나인 것처럼 더 이상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는 폐발전소의 거대한 동공(洞空)은 탄생의 공간이자 정화된 제의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뱃속이고, 검은 벽의 동굴이고, 빛의 배면(背面)이다. 무대에 놓인 돌들, 설치된 막 등은 신성한 힘을 매개하는 무구(巫具)처럼 보이기도 한다. 44년간 이어진 소문이 그들 사이에서 떠오른다. 테레사 학경 차와 그의 작업에 닿은 이들은 반드시 각자의 방식대로 그의 영결식을 치르게 된다는. 차갑고 울림이 큰 공간의 불분명한 소리 때문에 당황한 무대 앞 관객들은 그 소문의 증인으로 특별한 영결식에 초대되었다는 것을 머지않아 알게 되리라. 


촬영 | 손다니엘



뮤즈여, 순교자여, 역사 속 여성들이여, 멀리서 도착한 목소리여… 


제의에서 호명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지금 여기 있다는 선언이다. 현존을 발생시키는 그 힘에 의지해 듣기와 읽기, 보기와 움직이기가 무대 안팎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테레사 학경 차의 작업 대부분이 영어와 프랑스어로 이루어진 데 비해 〈뱃腹속話말術〉에서는 몽골어, 일본어, 광둥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 한국어가 포개어져 발화되거나 틀린 에코처럼 차례로 등장한다. 이러한 다언어 발화 형식은 한국어 사용이 자연스러운 곳에서 좀처럼 느끼기 힘든 몸과 언어의 낯선 관계를 형성한다. 이 외부인의 경험에 노출된 관객들은 이제 무엇이 들리고 들리지 않는지, 무엇이 시야를 열게 하거나 가리는지, 무엇이 끝내 감각되지 않는지를 자각하기 위해 배우들의 움직임을 좇아 몸을 틀거나 걸음을 옮긴다. 다가가거나 물러서고, 앉거나 서기도 한다. 어떤 말은 거의 들리지 않거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해석 가능한 말들은 몸 가까이 더욱 바짝 달려든다. 


유령화된 목소리가 호출하는 ‘당신’에 응답하는 입들, 입들.


관객인 당신은 언어가 언어의 경계를 재분배하는 경험 안에서 모국어라는 지배적 매개를 놓치고 거듭 소외된다. 이 소외의 경험은 모국어가 강력하게 떠받들고 있는 체제에 대한 환기로 이어진다. 그것을 해체하면서 동시에 구축한다는 것은 기억을 잃고 고아가 되는 일. 이방인, 디아스포라, 낙오자, 귀환자가 되는 일. 멀리 나와 다른 한 여성의 복화하는 몸, 받아쓰기하는 몸의 친족이 되어서. 그러기 위해서 〈뱃腹속話말術〉의 고아들은 호명에 “아니요”라고 대답하며 출석에 실패한다. 말하기의 실패이고 자리 얻기의 실패다. 그들은 학교라는 임의의 장소에서 불가능한 입으로 말하기를 연습한다. 라캉이 개념화한 ‘목구멍 속의 뼈’, 목소리를 틀어막는 그 뼈를 배출하는 방법은 오로지 비명뿐이다. 고아들은 기침하거나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 이 뼈를 빼내려고 애쓴다. 한쪽에서는 누군가가 뼈로 만든 피리를 바라보다가 호흡을 불어 넣는다. 그러고 나서 한데 모여 진행하는 모음 놀이는 여러 언어의 유사한 발음이 뒤섞이다가 ‘야!’라는 거친 호명이자 비명으로 끝이 난다. 이어 빗소리, 새소리 등이 들린다. 하나의 몸이 버려지고 다른 몸이 활성화되는 최초의 소리들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멀리서 온 이들이 멀리로. 텅 빈 몸으로.


촬영 | 김조안


촬영 | 손다니엘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관통해서 말하지?


장면이 바뀌고 배우들은 다른 인물이 된다. 복화술(ventriloquism)에 관한 대사가 당신이 있는 곳을 바꾼다. 복화술의 역사는 신탁과 무녀에 대한 기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근대 초기의 빙의, 기독교 신비주의, 인형극으로 이어지는 복화술의 계보를 살피다 보면 그것이 신탁, 마녀, 히스테릭한 여성들과 연관된 실천으로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다다른다. 때로 그것은 가장 오래된 예술 중 하나로 다루어진다. 제의적 기술로서든 정치적 비유로서든 복화술의 광대한 영역이 〈뱃腹속話말術〉에서는 테레사 학경 차의 《딕테》나 〈Mouth to Mouth〉, 〈A BLE W AIL〉 등의 작업에서 강조되는 매체인 몸, 복화술적인 형상에 집중된다. 말하는 몸과 목소리의 주체가 다른 세계. 그러나 식민의 역사, 어머니의 언어, 타자의 명령, 신의 음성, 증언의 잔향이 관통하는 몸은 좀체 점유되지 않는다. 


나는 타자로서 말하기를 원한다. 타자로서 말하기를 원한다. 말하기를 원한다. 원한다.


당신의 목소리가 몸에서 분리되어 오인되거나, 투사되거나, 침탈되는 세계. 이 복화술의 세계에서는 목소리가 전치(displacement)된다. 테레사 학경 차의 작업에서 전치는 주제이자 전략이며 존재 방식이다. 전기적 삶의 궤적에서, 추상적 사유의 층위에서 또 텍스트의 배열 속에서 그것이 작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목소리 역시 다른 몸으로 옮겨놓는다. 목소리는 결코 몸에 완전히 고정되지 않고 청취의 관습과 사회적 기대 속에서 순환하고 해석된다. 정체성, 위치, 목소리의 실천과 정치가 차의 디아스포라 몸 안팎에서 작동했듯이 말하는 몸과 말해지는 몸의 간극 속에서 젠더화된 복화술은 위치 지어진 몸과 목소리의 관계를 다시 묻게 한다. 목소리는 언제나 이미 몸과 언어 사이, 자신과 타자 사이의 경계에 걸쳐 울린다. 이 지점에서 복화술은 경계의 ‘몸을(으로) 쓰기’에 주목했던 여성적 글쓰기(écriture féminine)와 교차한다. 여성적 글쓰기의 ‘-로서 말하기(speaking-as)’는 발화의 위치를 전치하고 체현하는 다성적 울림이다. 마찬가지로 무대의 목소리들은 한 인물에 머물지 않고 역사로, 군중으로, 신화로 이동한다. 어머니이자, 딸이자, 연인이자, 신화적 인물이자, 역사적 타자로서 말하는 다성적인 몸들이 흩어졌다 모인다. 바라보는 당신의 몸도 거기 어딘가에 있다. 


촬영 | 김조안


촬영 | 손다니엘



돌의 무게를 음성의 무게로3


누가 말하는지, 누구의 목소리인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불분명하고 불확실한 유령의 말하기가 이어진다. 지금 당신의 뒤통수를 보는 것은 당신. 당신을 호명하고 당신으로 호명된 유령들은 아홉 개의 창문 아래에 선다. 무대 가운데에 놓인 카메라 옵스큐라는 엿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위치를 뒤바꾼다. 복화술이 목소리를 전치하듯이 보이는 자와 보는 자의 전치는 카메라가 기록하는 기억의 출처마저 흔든다. 투명한 관과 동굴 영상이 이어지면 무대는 신체 내부의 어둠으로 가득 찬다. 몸의 내장이자 기억의 내장. 언어가 다시 몸속으로 되돌아간다. 차가 우리에게 남긴, 말이 몸을 관통하는 고통과 통과하지 못하는 고통이 동굴 벽에 남은 음화된 손의 이미지로 투사된다. 이어지는 시위문 낭독은 어둡고 고통스런 공기를 급격히 바꾼다. 이제 목소리는 명백히 역사적이다. 파농, 잔 다르크, 아옌데, 홍콩과 몽골의 선언문들이 충돌하듯 병치된다. 차의 아카이브 전략을 충실히 따르는 듯하지만 더 직접적이다. 복화술로 은폐되었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순간, 언어들은 겹치고 어깨를 부딪치며 발을 구른다. “왜냐하면”이 반복될수록 인과의 논리에 금이 간다. 남는 것은 리듬과 호흡뿐. 말은 커다란 덩어리, 공백으로 남는다. 


촬영 | 손다니엘


촬영 | 김조안



지물을 태우고 호명 이전으로 되돌리는 침묵, 하얀 침묵


그러니까 백지. 극이 시작되기 전 관객들이 쓰임을 모른 채 건네받은 메모지 크기의 제사지(祭祀紙), 그 백지. 당신들 중 몇몇은 섬유 결에 빛이 은은하게 투과하던 그것으로 눈앞을 가리고 무대를 바라본다. 테레사 학경 차의 관객, 당신들이다. 스크린, 레이스, 면포, 안개… 차와 당신 사이에 언제나 그것들이 진실처럼 있다. 하얀 천이 술렁거리는 소문처럼 움직일 때 배회하는 유령들의 시간은 그 위에서 만나고 병합된다. 극의 시간성은 정처 없다. 당신은 당황하거나 함께 정처 없어진다. 그때 “나는 당신을 압니다”라는 문장이 입 모양만으로 읽힌다. 나도 당신들을 안다고 말하고 싶은 당신을. 제사지를 쪽지처럼 접어 묶고 태우는 당신을. 살아 있는 유령인 당신을 압니다, 알아요. 누구나 울고 싶어진다. 《딕테》 〈칼리오페 서사시〉 장의 그 문장은 디아스포라 딸이 디아스포라 엄마를 낳는 주문이기도 하다. 〈뱃腹속話말術〉은 죽은 자와 함께 말하기 위한 영결식이자, 여러 몸들의 출항식이 된다.


촬영 | 김조안

 

촬영 | 김조안



우리가 보는 것과 우리가 듣는 인물(아마도 테레사 학경 차) 사이에 발생하는 어떤 어긋남, 이 어긋남이 애도를 가능하게 한다. 여기에 없는 목소리를 듣는 것. 그 목소리를 다른 몸들로 옮겨 울리게 하는 것. 없지만 있는 목소리라는 진실. 사랑은 그렇게 시대착오적(anachronistic)인 진실로 계승된다. 애도하는 아홉 몸들이 닫힌 철문을 열고 내장 밖으로, 동굴 밖으로 퇴장한다. 차의 퍼포먼스 작품, 〈안개 속에서 깨어난(Réveillé dans la brume)〉의 오마주로도 보이는 마지막 장면은 끊임없이 다시 시작하고 다시 설정하며 인식을 다른 방향으로 우회시키는 “다중의 입구”4, “원 속의 원, 동심원의 연속”5과 연결된다. 차는 이 작품에 대해 반(反)서사적으로 이미지와 사운드의 텍스트성을 고조시킨다고 설명했다. 안개는 하나로 보이던 것이 여러 층위로 분열되는 상태를, 다른 장소성과 암시적 차원을 열어 두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그러므로 아홉 몸의 퇴장은 다른 세계로의 입장이다.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을 향한다. 침묵의 사후. 열린 문틈으로 겨울볕이 환하고, 당신은 뱃속에 혼자 남아 산도를 향해 돌아눕는 것처럼 몸을 튼다. 이상하고 익숙한 침묵이 몸에 꽉 찬다. 이것은 잠시, 당신의 몸이다. 


촬영 | 안소정∙박수림






1 Nicolas Abraham and Maria Torok, The Shell and the Kernel : Renewals of Psychoanalysis, ed. NicholasT. Rand (Chicago and London :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4), pp. 171, 173, quoted in Cho, Hauntingthe Korean Diaspora, p. 1

차학경, 김경년 역, 〈딕테〉, 문학사상, 2025, p. 30

차학경, 김경년 역, 〈딕테〉, 문학사상, 2025, p. 175

롤랑 바르트의 ‘다중의 입구(plurality of entrances)’는 텍스트를 하나의 중심이나 단일한 의미로 수렴되는 구조가 아니라, 여러 경로로 들어갈 수 있는 장(場)으로 이해하는 관점으로 《S/Z》(1970)에서 발자크의 단편을 분석하며 체계화했다.

차학경, 김경년 역, 《딕테》, 문학사상, 2025, p. 185, 187


김지승 작가

경계 안팎의 유동적 위치성을 체현하는 작가이자 독립연구자. 문학, 문화이론, 정신분석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제도 밖에서 여성적 읽기-쓰기의 공간을 짓고 허물기를 반복하며 다양한 여성 서사를 주제로 강의와 다매체 연구를 이어 가고 있다. 《100세 수업》 《아무튼, 연필》 《짐승일기》 《술래 바꾸기》 《마지네일리아의 거주자》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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