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腹속話말術〉 아카이브 | 인터뷰

양효실 평론가와 프로젝트 구무가 나눈 대화를 통해 지금 다시 차학경이 호명되는 이유와 그 정동의 궤적을 기록합니다. 

〈뱃腹속話말術〉의 공동 창작 과정과 수행과 애도의 언어를 둘러싼 질문들을 함께 살펴봅니다. 


참여한 사람들


양효실

양효실은 서울대학교 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서울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강의한다. 태도로서의 페미니즘-퀴어의 (미적) 정치가 육화된 텍스트 읽기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미술 비평이 주업이고 연극, 문학, 공연도 들락거린다. 《불구의 삶, 사랑의 말》, 《권력에 맞선 상상력, 문화운동 연대기》 등을 썼고, 주디스 버틀러의 《윤리적 폭력 비판》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오윤주

프로젝트 구무를 기획하고 차학경의 《딕테》 낭독 퍼포먼스 〈Remnants. 사라진〉(2025)과 〈뱃腹속話말術〉(2026)에 연출, 각본, 배우로 참여했다. 서울대학교 비교문학 협동과정에서 박사과정 중이다. 언어와 형식, 물질의 경계를 실험하는 간매체 작업을 통해 번역 불가능성을 가시화한다. 차학경을 만난 뒤로 탈주술화된 세계를 재상상하는 실천들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현재 차학경의 작업에 드러난 구술성과 문자성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이혜목

〈뱃腹속話말術〉(2026)에 조연출 및 배우로 참여했다. 철학을 공부하다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연극 〈가자 모놀로그〉(2024)와 단편 다큐멘터리 〈팔레스타인을 위한 두 대의 카메라〉(2025)를 만들고, 책 《응답하는 이미지들》(2025, EVM)을 썼다.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화전공에서 차학경의 다매체 작업에 드러난 다성적 주체에 대한 석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


전희영

프로젝트 구무를 기획하고 〈Remnants. 사라진〉(2025)과 〈뱃腹속話말術〉(2026)에 시노그래피로 참여했다. 금속과 불을 다루던 경험에서 출발해, 현실 조건과 환경에 반응하는 작업을 한다. 얽매임 없이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며 언어를 찾아가고 있다. 작업의 밑바탕에는 늘 같은 마음이 놓여 있는데, 먼저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기쁜 애도로서 작업한다고 믿는다. 학부에서 공예와 미디어아트를 전공했고, 현재 조소과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손효빈

〈뱃腹속話말術〉(2026)에 시노그래피로 참여했다. 보이지 않는 위협과 사건들이 개인의 신체적, 정서적 경험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탐구한다. 시각예술을 기반으로 허구적 글쓰기, 영상, 드로잉, 사운드 설치를 통해 실제 서사를 물질적인 형식으로 번역한다. 최근에는 모성 연구를 중심으로, 세대를 거쳐 전언되는 기억과 소리 감각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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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실 : ‘프로젝트’라는 용어는 라틴어 어원에 따르면 ‘단발성’이라는 뜻도 있고, ‘pro-’니까 ‘앞으로 던진다’는 뜻도 있는데요. ‘구무’라는 이름과 태도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오윤주 : 프로젝트 구무는 2025년 여름 공연된 〈Remnants. 사라진〉을 준비하며 만들어진 프로젝트 그룹인데요. 당시 제가 차학경 연구를 하며 《딕테》 집단 낭독 공연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초기 멤버는 걸균, 은솔, 세연, 희영, 민희 샘으로 시작했고요. 처음에는 비교문학과에 외국인 및 유학생분들이 많이 계시니, 차학경의 《딕테》를 여러 언어로 함께 읽는 낭독 공연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지금 《딕테》 낭독 행사들이 많이 열리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주로 영어로 읽히고 한국에서는 한국어로 읽히니까요. 다언어적인 낭독 공연을 만들고 싶었어요.


양효실 : 완전 가내 수공업인 거네요. 과 내에서 다 같이 읽고 번역하고.


오윤주 : 맞아요. 그렇게 낭독 퍼포먼스를 준비하면서 ‘프로젝트 구무’가 만들어졌어요. 이름은 뭐로 할지 고민하다가, 구멍의 옛말이자 방언인 ‘구무’라는 단어를 발견했는데요. 한자 뜻을 덧대면 ‘입의 춤(口舞)’, ’입의 무당(口巫)’ 등 의미가 무한히 확장될 수 있고, 《딕테》의 중요한 모티프인 숫자 9와도 연관되어서 선택했습니다.


양효실 : 언어학적인 관심에서 다의적인 용어로 치밀하게 선택된 단어였네요. 사실 《딕테》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특정 진영이 있잖아요. 비교문학과에서 《딕테》를 가지고 퍼포먼스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적절한 내재적인 합목적성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러면서도 MZ 세대라 불리는 어떤 특정 세대이기도 하고, 동시에 ‘문학’이라고 하는 말이 가지고 있는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있죠. 좀 더 하위문화적이거나 동시대적인 감성에서 보자면 문학은 왠지 좀 낡은 느낌인데, 비교문학과 안에 ‘문학’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고, 동시에 이 ‘비교(comparative)’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급진성이 있기도 하고요. 사실 비교문학과가 서울대 내에서 가장 자유롭고 뭐든 해도 된다는 분위기잖아요. 온갖 지역 출신의 학생들이 들어올 수 있고, 정말로 《딕테》 같은 과인 거죠 어떻게 보면. 동시에 70∼80년대 미국 버클리에서 석사를 세 개인가 했던, 가장 급진적인 실험들이 전개되던 문학 또는 예술의 르네상스 시기에 거의 모든 것들을 섭렵한 차학경이라는 천재, 혹은 괴물, 혹은 말하는 여자와. 지금 제3세계 한국의 서울대 비교문학과의 이 젊은 친구들의 광적인 애정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공연을 비교문학과에서 보여 준다는 것은 저에게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어요. 증상적이라는 생각도 좀 들었고, 굉장히 적절한 컨텍스트를 이번에 비로소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전작 〈Remnants. 사라진〉도 봤고 이번 〈뱃腹속話말術〉 공연도 봤으니까… 일단은, 각자가 《딕테》와 맺고 있는 관계가 어떤지 궁금해요.


2025.07.19 서울대학교 인문소극장 〈Remnants. 사라진〉|사진 : 안예진


2025.07.19 서울대학교 인문소극장 〈Remnants. 사라진〉|사진 : 안예진


전희영 : 차학경이 호명된 시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실제로 저희가 아트선재센터 〈혀 달린 비〉 전시도 보고 난 후였고요. 〈혀 달린 비〉 전시가 개최된다고 했을 때도 이미 문학계에서는 차학경에 대한 붐이 있었던 것 같고, 그 후에 미술계에서 좀 더 늦게 반응이 오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학교를 다니면서 느낀 바로는, 미술대학 안에서는 차학경 작가가 그렇게까지 호명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거든요. 저와 같이 조소과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동기들도 저를 통해서 차학경에 대해 처음 들은 경우가 많았고요. 그런데 비교문학과에서는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차학경을 알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서, 그런 차이들이 존재했던 것 같아요.


양효실 : 이런 접속들이라고 할까요? 학교에서 벌어질 수 있는 접속의 방식이기도 하지만. 원래 알고 지내던 관계였나요?


오윤주 : 저와 희영이 처음 기획을 시작했었고, 희영이 미술 하는 분들을 소개해 주었어요. 혜목 님은 우연히 연락이 닿아 같이 하게 되셨고요.


양효실 : 미술 팀이 들어오면서 같은 과 내에서만 일어난 일도 아니네요. 현재 미술계에서는 차학경이 외부로부터의 유명세라고 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인지되면서 호명되는 지점들이 있죠. 차학경은 국내 문학 씬에서는 굉장히 애정을 갖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영상 같은 것들이 잘 안 들어오기도 했었고요.


손효빈 : 주변 미술 하는 동료들이 2024년쯤에 차학경 이야기를 계속 하는 거예요. 저는 어떤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실 혼자 읽기 쉽지 않은 글이더라고요. 한국어만 하는 독자로서는 언어적인 배경이 없는 상태면 더 그렇고요. 그래서 윤주 님이 여이연에서 하신 《딕테》 강의를 들었었어요. 정말 해설하듯이…


오윤주 : 제가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딕테》 4주 강의를 잠깐 한 적이 있었어요.


손효빈 : 정말 독해하듯 읽었던 것 같아요.


양효실 : 그게 몇 년이에요 그럼? 〈혀 달린 비〉가 몇 년이었죠?


전희영 : 2024년이요.


오윤주 : 제가 강의한 건 2024년에서 2025년 넘어가는 겨울이었어요.


손효빈 : 차학경이 글을 쓰는 방식이 미술계에서 언어를 다룰 때의 방식과 너무 유사하다는 생각이 좀 들었던 것 같아요. 분절적이라거나, 신화를 가져온다거나, 영상 내레이션으로 텍스트를 읽는 목소리를 한국어 화자가 아니라 다른 화자를 활용한다든가, 이런 방식들이 영상을 다루는 문법과 너무 비슷하다고 느꼈고요. 그때 마침 모성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그런 맥락에서 《딕테》를 몸으로 소환하는 작업을 지켜보고 같이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양효실 : 이미지 편집, 영상 언어라고 해야 할까요? 이미지로 말하는, 이미지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참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간극이 있단 말이에요. 근데 차학경의 언어에서는 그런 간극이 안 느껴졌다는 이야기죠?


손효빈 : 맞아요.


양효실 : 또는 기존에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차학경이 주는 이물감이 당연히 있잖아요. 예를 들어 《유령 연구》의 저자 그레이스 조도 차학경의 《딕테》에 대해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다고 표현하거든요. 그 후에 그 의미가 서서히 들어왔다고 고백하던데. 2024∼2025년이 지금 이 모임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분기점이 되네요.


이혜목 : 저는 차학경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게 양효실 선생님 수업이었어요. 교양 수업에서 차학경에 대해 지나가듯 한 번 이야기해 주셨고, 그걸 듣고 혼자 도서관 가서 찾아봤는데 제가 처음 보는 종류의 텍스트였던 거죠. 그래서 너무 놀랐고, 혼자서 뒤를 캐듯이 차학경 관련 자료를 모으며 지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저도 영상을 찍기 시작했어요. 연극 동아리 친구들과 연극을 올리는 과정에서 제가 차학경에게 알게 모르게 배운 것들이 많기도 했고요. 저는 차학경으로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뭔가 만들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기분이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차학경에 관련된 프로젝트를 여기서 하신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고, 도울 수 있는 게 없을지 여쭤보는 과정에서 발을 좀 더 들이게 된 경우입니다.


오윤주 : 저도 2024년 초에 차학경을 처음 읽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그 후로 계속 파기 시작했는데요. 저는 학부에서 국문학과 영문학을 하고 석사는 번역을 공부했는데, 문학이라고 하는, 아까 말씀하신 그 시대착오적인 어떤 유물과도 같이 고착화된 장르 안에 있는 게 너무 답답해서 비교문학과에 오게 되기도 했어요.


양효실 : 감각적으로 안 맞죠 사실.


오윤주 : 네. 그래서 문학과 다른 매체들, 다른 장르들을 교차해서 무언가 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는데, 차학경이 했던 작업들이 저와 많이 공명했던 거죠.


양효실 : 기존에 페미니즘과 포스트콜로니얼리즘에서 차학경이 좀 읽혔죠. 지금 이 공연을 그냥 서울대 내 협소한 어떤 한 과 또는 어떤 특정한 모임의 관심이라고 이야기할 것인지, 아니면 2024∼2025년 코로나 이후에 젊은 세대, 젊은 예술가들이 함께 엮어 낸 어떤 정동이라고 이야기할 것인지에 따라 대단히 다른 지점들이 있을 것 같아요. 이 공연은 포스트콜로니얼의 느낌은 강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비교문학과라는 맥락이 굉장히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만든, 오로지 연출가에게만 질문할 수 있는 그런 텍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오늘 이야기가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분명히 기성세대가 《딕테》에 대해 가졌던 관심, 즉 우리에게도 한국계 미국인 작가이면서 동시에 탈식민주의적인 담론이 필요했을 때 선정된 작가로서의 차학경, 혹은 실험적 아방가르드 예술의 계보 안에서 차학경의 급진성을 이야기하는 방식들이 있는데요. 그런데 이 모임에서는 2024년 이후라고 하는 굉장히 특정되는 지점들이 있고, 흥미로운 부분이거든요 지금.


오윤주 : 사실 말씀하신 것처럼 《딕테》를 두고 정체성 정치에 집중하는 연구사와 아방가르드 미학에 집중하는 연구사가 양분되어 왔잖아요. 미국에서는 2020∼2021년쯤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로 확 붐이 됐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양효실 : 캐시는 한국계 미국인 예술가라는 관점에서 철저히 자기를 투사해서 읽어 내요. 동화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삭제된, 불편하고 애브젝트한 지점에 놓인 차학경을 통해 미국 내 유색인 여성에 대한 혐오 담론을 전면화하면서, 차학경의 텍스트를 일종의 탈역사적 정전에서 역사적 구성물로 맥락화했죠. 《유령 연구》에 등장하는 양공주의 관점도 사실 미국 내 주류 페미니즘, 제3세계 페미니즘에서도 아예 배제된 이야기잖아요. 그런 이야기와 《딕테》를 연결하는 방식이 굉장히 또 적절해 보이는 지점이 있었는데요. 지금 이 공연은 다언어적이고 굉장히 플렉서블한 공간에서 미술, 문학, 음악 하는 사람들, 그리고 페미니스트라는 표현을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이들이 모여 어떤 느슨한 연결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아요.


오윤주 : 이 공연은 다르다고 느끼셨던 부분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면… 제가 《딕테》를 읽고 너무 빠졌던 이유는 사실 그동안 문학 연구에서 문학이라는 것을 다룰 때 너무나 동질적인 장르라는 것을 이미 전제하고, 책이라는 매체를 이미 너무나 동질적으로 전제하고, 특히 한국어 혹은 민족어라고 하는 그 단일어의 동질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문학사에 대한 환멸이 컸었기 때문에. 《딕테》에서 다언어, 그리고 책이라는 매체를 넘어서는 다매체적인 시도가 사실 디아스포라로서의 체험이기도 하잖아요. 과거에는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탈식민주의적인 맥락에서 더 읽힐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오늘날에는 사실 다언어나 다매체라는 게 이미 너무 조건화된 삶의 방식인데, 여전히 그걸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어떤 것들이 있다고 저는 생각이 되거든요. 특히 저는 비교문학과에서 공부하면서 너무 다양한 문화권과 언어권에서 오신 분들과 소통을 하면서, 한국인/한국어/한국이라고 하는 것이 저한테 재정의되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그게 한국 문학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서 이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제3세계 한국이라는 소수자성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한국 내부의 차이들, 다른 한국어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저는 개인적으로 했었고요. 그래서 기존의 탈식민주의 논의와는 다른 무언가를 새롭게 차학경을 경유해서 다른 한국어를 실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어요. 또 그래서 문학하는 분들뿐 아니라 미술 하는 분들, 음악 하는 분들이 다 오게 되신 게 그런 다른 장르들의 언어가 들어왔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도 굉장히 큰 부분이었고요. 그리고 사실 전작 〈Remnants. 사라진〉을 서울대 인문소극장에 올리기 전부터 파워플랜트라는 공간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양효실 : 어휴… 너무 넓죠. (웃음) 그런데 그것을 핸들링할 수 있다, 또는 핸들링해야겠다,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거죠?


오윤주 : 맞아요. 사실 너무나 제 역량을 넘어서는 공간이었지만… 처음에는 그냥 막연하게 그 공간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폐보일러실이라는 맥락도 그렇지만 그냥 그 공간이 주는 감각 자체가 제의를 하기에도 적합한 공간 같았고. 과거의 시간성이 잠들어 있는 어떤 공간으로서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인문소극장 공연을 말하자면 먼저 실험을 해 봤던 것 같아요.


양효실 : 그렇게 역사가 또 만들어지고 있네요. 일단 파워플랜트 공간이 워낙 컸기 때문에, 음악보다는 미술이 훨씬 눈에 더 많이 들어왔단 말이에요. 그래서 사실 제일 궁금했던 건 마지막 호롱불 장면이었어요. 《딕테》의 거의 마지막 장면 같은 거잖아요. 굉장히 오소독스(orthodox)한. 그게 제 세대, 그 호롱불 문화를 체험한 사람들한테는 엄청난 노스탤지어를 일으키는 장면이지만, 여러분에게는 민속 문화, 민속 체험, 박물관 같은 데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거 아니었을까? 그래서 젖어 들었을까? 저는 《유령 연구》를 읽고 나서 《딕테》가 차학경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엘레지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는데요. 《유령 연구》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사실 차학경과 어머니의 관계가 독립적이면서도 엄청나게 좋은 관계였잖아요. 모녀 관계가 좋은 경우가 그렇게 흔치는 않은데. 어마무시한 라포가 형성되어 있는 모녀 관계에서의 어떤 이야기인데, 그렇다고 이 둘이 안정적인 관계에 있는 건 아니고. 우리가 《딕테》를 계속 미래로부터 올 텍스트라고 본다면, 조만간 딸아이가 죽을 미래가 오는 거잖아요. 차학경 장례 치르고 이 책이 도착하던가요? 라캉이 말하는 전미래 시제와도 연관해서 보자면, 이 책이 우리에게 계속 어떤 울림을 주는 이유는 이 책 자체가 갖고 있는 탁월함도 있지만, 동시에 차학경의 개인사, 가족사를 둘러싼 이 어마무시한 어떤 비극, 정동이 가족 관계 또는 차학경에게 들러붙는 그 많은 트라우마적인 존재들을 불러오지 않나? 모국도 아니고 가부장제도 아니고 주류 페미니즘도 아닌, 이 텍스트로 계속 모여드는 사람들이잖아요 지금. 젊은 여성들, 이제 더 이상 결혼도 안 하고… (웃음) 어딘가로 모이긴 해야 되는데, 그 호롱불 아래 모인 건가? 이런 식의 생각들이 들면서, 나쁘진 않은 건데.


2026.01.17 서울대학교 제1파워플랜트 〈뱃腹속話말術〉|사진 : 김조안


2026.01.17 서울대학교 제1파워플랜트 〈뱃腹속話말術〉|사진 : 손다니엘


2026.01.17 서울대학교 제1파워플랜트 〈뱃腹속話말術〉|사진 : 김조안


양효실 : 그래서 차학경이 소환되는 방식에 있어서 이번 파워플랜트 공연이 단지 서울대 내의 소소한 프로젝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강남역 출구라는 이름처럼, 아카이브로서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겠구나. 이게 굉장히 나중에, 서울대 잘난 애들이 한 거네, 이렇게 엘리트주의로 봉합이 될지. 혹은 이게 이제 출발점이 돼서 이 이후 밑에 있는 쫌쫌따리 페미니스트들이 또 이 작업을 확장하는 방식의 시드머니가 될지, 이런 부분에서 자못 궁금한데요. 전미래 시제의 관점에서 보자면, 미래인 과거에서 누가 오고 있지? 왜냐하면 비교문학과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은 공연이고, 저는 보내 주신 스크립트를 보면서 공연에 몽골어가 사용된 걸 그제야 알게 됐어요. 공연에서 한국어 다음 등장한 첫 언어가 몽골어였구나. 그리고 중국어와 광둥어가 있었고요.


오윤주 : 네, 중국어와 광둥어 둘 다 사용됐어요.


양효실 : 사실은 몽골어, 광둥어 같은 언어들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다언어적인 동시대 트랜스내셔널한 조건하에서 빠진 언어들이잖아요. 많은 경우 영어 중심의 논의가 이루어지고, 영어와 지역어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하는데. 이 여덟 개의 언어들이 수평적인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있잖아요. 그렇지만 다언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또 위계화되어서 작동하는데. 여기서 몽골어를 쓰시는 어트건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납작한 국제 시장 같은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 반가운, 고마운 분이신 거죠. 스페인어를 쓰는 분도 계셨던 것 같은데.


오윤주 : 플로렌시아 샘은 칠레 분이라서, 칠레의 스페인어로 알고 있어요.


양효실 : 그러면 그 차이는 이분한테 들어야만 아는 부분이겠네요. 스페인 본토의 언어와 다른 부분들은.


오윤주 : 맞아요. 후걸균 샘 같은 경우도 중국어와 광둥어를 사용하시는데, 고향이 광둥 지역이어서 광둥어가 모국어에 더 가깝다고 하셨어요. 같은 언어 안에서도 더 주류적인 언어와 방언에 대한 맥락도 공연에 들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포함하게 됐어요.


이혜목 : 일본어를 사용하시는 카즈네 샘이 오사카에서 오신 분이라서, 표준 일본어를 사용할 것인가 오사카 사투리를 사용할 것인가도 고민을 했던 기억이 있어요.


양효실 : 표준어와 사투리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분들이 자신의 어떤 언어 (무)능력을 드러내야 할지 고민했군요. 영어를 피진화하려는 것이 차학경의 중요한 전략 중 하나이기도 했고, 그렇게 언어를 의미론적 기능에서 뜯어내 일종의 이미지가 될 수 있을 때까지 비우려는 시도가 겨우 읽히고 겨우 보이는 텍스트성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이번 공연에서 《딕테》만큼이나 여러분들이 함께 만드는 이질적이고 분산적인 텍스트성도 가감 없이 즐겼어요. 관객의 많은 숫자가 한국인이었지만 외국 분들도 상당히 많이 오시기도 했고요. 그렇게 균질하지 않은, 엘렌 베리(Ellen Berry)의 표현을 빌리자면 ‘산산조각 난 아카이브’처럼. 지금 이 공연에 아카이브가 굉장히 많이 사용되는데 그것들이 모여서 종합하는 방식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계속 허물어지는 방식으로 인용이 되고, 계속 계속 허물어지고 있는 연극이었단 말이에요. 그게 차학경을 오마주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차학경을 인용(refer to)하면서 다른 어떤 사건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전, 정전에 대한 엄숙주의적 반복이 아닌, 함께 모인 친구들끼리의 지금-여기에서의 협업도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 공연이었다고 생각되고요. 페미니즘이건 소수자 운동이건 다 어쨌든 코뮤니티(community)에 대한 이야기인 거잖아요. 참여하신 분들이 몇 분 정도가 되나요?


오윤주 : 스태프까지 다 합하면 거의 스물다섯, 서른 명 정도. 인문소극장 작업까지 포함하면 더 많고요.


양효실 : 이 스테이징, 시노그래피라고 하는 무대 구성에 대해서도 더 듣고 싶어요.


전희영 : 아까 호롱불 관련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선생님은 호롱불이 저희에게 굉장히 낯선 존재일 거라고 하셨는데 사실 미술 팀 입장에서는 대본 팀이 가져오는 소스들을 볼 때 대부분 다 그런 것들이었거든요. 예를 들면 의상도 처음에 린넨 옷 같은 제안이 왔었고, 혹은 우물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다 차학경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냥 대본 팀 분들이 원했던 것과 감각이 작동하는 방식이 미술 팀과 달랐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그런 면에서 분명히 같은 나이대를 살고 있지만 특히 배우분들 중 걸균 샘 같은 경우 돌을 줍거나 붓글씨를 쓰거나 달 보는 등의 취미를 가지고 계셔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손효빈 : 또 기억나는 게, 저희가 무덤 이야기를 한참 했었는데요. 윤주 님이 파워플랜트 공간을 두고 은폐된 공간 안에 다시 돌아온, 뱃속으로 돌아온 아이들을 애도하는 작업으로서의 장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던 것 같아요. 그것을 공간 안에 구현할 때 정말 배를 보는 것 같은 고대의 자궁-무덤이라고 하는 형상들을 보여 주시면서, 그런 걸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해 주셨어요. 근데 미술 팀 입장에서는 관객이 이미 들어올 때부터 이 공간이 폐보일러실이라는 것을 알고 느낄 텐데, 구조물로서 그걸 다시 확인시켜 줄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텍스트에서도 애도의 뉘앙스를 계속해서 풍기고 있는데 그걸 다시 한번 구조물로 만들 이유가 있을까. 그래서 어떤 무덤을 보여 줄 수 있는 구조물이 아니라 무덤을 연상시킬 수 있는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좀 투닥투닥 했던 것 같아요. 공간에 설치된 막 같은 경우에도, 공간을 뱃속으로 구성한다고 한다면 정말 어떤 피부 안으로 들어온 것 같은 질감의 구조물을 만들 수도 있고, 혹은 그 공간 안에서 어떤 텍스트를 발화하거나 어떤 움직임을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막 구조물 위에 무게가 있는 돌 같은 것을 던져서 축축 늘어지는 움직임을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 이런 식으로 대본 팀의 제안을 번역하는 과정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오윤주 : 미술 팀에서는 장소 특정성을 좀 더 살리기 위해 공간에 여백을 두는 방식이나 공간의 창문을 사용하는 등의 제안을 주셨어요.


양효실 : 창문 장면은 정말 좋았어요. 《딕테》의 마지막 장면 중에 ‘나를 창문으로 올려 주세요’라는 부분이 있잖아요. 파워플랜트 공간 위쪽에 난 창문들에 옵스큐라를 설치하거나 창문 블라인드를 올리는 방식으로 그걸 중요한 장면으로 선택했다는 것. 그러니까 이 공연에서 차학경에게서 가져온 장면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동시에 굉장히 강렬한 첫 장면, 이 창문 장면, 그리고 호롱불 장면. 그리고 또 뭐 있죠?


오윤주 : 그림자와 같이 복화술하는 장면도 ‘말하는 여자(diseuse)’ 장면을 재해석한 것이었어요.


전희영 : 미술 팀은 뒤로 갈수록 차학경의 《딕테》라는 원본 자체보다는 〈뱃腹속話말術〉 대본을 더 많이 참조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처음에 미술 팀이 받았던 주문은 이건 연극이 아니라는 것이었거든요. 기획을 시작할 때 연극보다는 퍼포먼스를 목표로 삼았던 것 같아요. 또 미술 팀의 핵심 멤버인 네 분이 모두 시각예술 전공자여서 연극을 해 본 분은 없었던 것 같고, 유일하게 한 팀원이 영화 미술을 하다 왔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건 연극이 될 수밖에 없겠다는 운명을 저희끼리 받아들이는 시간이 있었고, 그다음에는 그럼 무대를 만들자고 목표를 전환한 시기가 있었어요. 그 후에는 철저히 대본을 참조하면서 동시에 여러 가지로 타협하는 과정들이 있었는데, 사실 대본 팀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설치할 것이냐는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기보다는 이걸 관객에게 어떻게 보여 줄 것이냐에 집중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미술 팀은 예산 관리도 했어야 하다 보니, 현실적인 조건들을 고려했을 때 타협해야 하는 것들이 있었어요. 창문 장면의 경우, 미술 팀에서 창문에 카메라 옵스큐라를 설치하게 된 것은 파워플랜트라는 특수한 공간에 반응하는 조각으로서 옵스큐라를 만들고자 했던 시도였는데요. 높은 곳에 올려져 있는 창문-옵스큐라 구멍에 퍼포머와 관객이 사다리를 타고 직접 올라가 보게 만들어 대본에는 없었던 움직임을 끄집어내고 싶기도 했어요. 이런 지점에서 대본과 미술 중 무엇 하나가 선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몇 가지 키워드만으로 더듬더듬 시간을 쌓아 갔던 구무의 제작 방식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손효빈 : 어제 공연 기록 촬영본을 받아서 봤는데, 창문 옵스큐라가 사실 옵스큐라 안쪽에 필름을 대야 해서 공연 때처럼 그렇게 아래쪽에 빛이 모이는 구조물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공연 상황에서는 관객이 옵스큐라에 올라가지 못하니까, 차라리 설치했을 때 빛이 아래쪽에 모여서 어두운 공간에서 유일하게 바깥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공유했어요. 그래서 옵스큐라 안쪽에 필름을 대지 않고 굴뚝처럼 그냥 그렇게 두는 것으로 결정했었어요. 뼈피리 같은 경우는 어떤 애도의 맥락에서 산 사람들, 퍼포머들의 숨으로 산호 혹은 동물, 죽은 것들의 뼈를 통해서 소리를 낸다는 개념이 좀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냥 숨소리이면서, 퍼포머들이 입으로 불 때면 그 물질이 따뜻하고 촉촉해지거든요. 그런 것들이 공연을 보는 분들에게 얼마나 잘 전달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카메라 옵스큐라|2026.01.17 서울대학교 제1파워플랜트 〈뱃腹속話말術〉|사진 : 김조안


뼈피리 |2026.01.17 서울대학교 제1파워플랜트 〈뱃腹속話말術〉|사진 : 김조안


복화술 |2026.01.17 서울대학교 제1파워플랜트 〈뱃腹속話말術〉|사진 : 김조안


양효실 : 듣다 보니 궁금해지는 게, 전작 〈Remnants. 사라진〉과 이번 〈뱃腹속話말術〉 공연이 많이 달라졌지요?


전희영 : 배우분들이 유학생분들이 많다 보니 본국에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 왔다 갔다 하시는 분들도 있고, 그러면서 배우들도 교체가 됐었어요.


오윤주 : 사실 그래서 이번 파워플랜트 공연 때 대본을 다시 쓸 수밖에 없기도 했어요. 이 공연이 정해진 하나의 대본을 반복해서 연기하는 연극이 아니라 퍼포먼스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이 작업에 참여하는 분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며 공동 대본을 만들었기 때문에 참여자가 바뀌면 대본을 다시 쓸 수밖에 없었던 지점이 있었어요.


양효실 : 참여자들이 모두 공부하는 연구자나 예술가들이고, 모두 동등한 지분을 가지고 참여한 공연이었잖아요. 육체성과 발화라고 하는 것이 각 퍼포머들의 몫으로 존재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래서 대본 구성 과정에서 형식적인 평등의 방식으로 분배된 건지, 아니면 어떤 팽팽함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이혜목 : 일단 윤주 님이 최종적인 대본 스크립트 구성을 하셨고, 걸균 샘이나 효진 샘처럼 대본 구성에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도 계셨어요. 배우분들이 직접 대본 일부를 쓰시기도 했고, 혹은 글을 써서 윤주 님께 전달해 주시면 윤주 님이 그것을 수정해서 반영하는 식으로 구성했어요.


오윤주 : 전작을 만들 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대본 워크숍을 계속 진행했어요.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나온 것 중에 좋은 게 있으면 그걸로 장면을 만들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요.


양효실 : 진짜 20대, 30대 초에 할 수 있는 일이다. (웃음)


오윤주 : 한 번씩 하고 나면, 소진되면 진짜 힘들었어요.


이혜목 : 제가 대본 워크숍이 너무 기억에 남는 게, 처음 갔는데 다들 《딕테》를 들고 동그랗게 모여 앉아서 돌아가면서 읽는 거예요. 마치 그게 성경인 것처럼. 그래서 이건 약간 컬트 집단도 아니고 너무 좋다, 생각했고요. 그렇게 《딕테》를 다 같이 읽고 시작하는데 사람마다 텍스트를 발화할 때 목소리나 방식이나 어조가 다 다르잖아요. 이런 것들을 윤주 님이 녹음해서 반영하려고 하셨던 것 같고, 그런 것들이 기억에 남아요. 제가 배우로 참여하면서 좋았던 것은, 아무래도 다양한 배경에서 오신 분들이 있으니까 이곳이 아니면 그분들을 만날 기회가 없잖아요. 칠레에서 오신 플로렌시아 선생님과도 친구가 됐는데 칠레가 다른 나라지만 이제 남처럼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고, 특히 공연 마지막에 시위문을 낭독하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양효실 : 칠레 전 대통령 아옌데의 연설도 있었죠.


이혜목 : 네, 맞아요. 한국어로는 무오독립선언서도 들어오고, 광둥어 선언문, 몽골 민주화 운동 선언문 등 다양한 정치적 맥락을 연출님이 엮으려고 시도하셨어요.


양효실 : 그 텍스트들은 각자 가지고 온 거예요?


오윤주 : 네, 제가 부탁해서 각자 가지고 오신 것들도 있고, 제가 드린 것들도 있고요.


이혜목 : 그렇게 이 장소나 시간이 아니었다면 함께할 수 없었을 것 같은 것들이 함께할 수 있어서, 그런 걸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양효실 : 문화 교역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환승 지대였군요. 《딕테》 자체는 차학경의 몸이 그 문화적 교역이 일어나는 장소라고 한다면, 이 공연은 비교문학과의 어떤 특수한 방식으로, 무일푼이어도 기꺼이 모일 수 있는 가난한 어린 예술가들이 모여서 한, 정말 아방가르드 실험이 그런 거잖아요. 그리고 분명 SNS로 광고하고 SNS를 통해서 어떤 반응들이 있었을 텐데. 흰 옷을 입은 아이들이라는 건 일종의 레트로적인 감성을 입은 거잖아요. 이 공연을 할 때의 감각과 평상시의 감각 사이에 간극 같은 건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이혜목 : 제가 SNS로 홍보를 많이 하려고 하긴 했는데, 사실 생각보다 많이 와 주셨어요. 제가 연락을 드릴 때 주안점을 두었던 건 차학경을 아시는 분들한테 일단 1차적으로 컨택을 하려고 했고, 말씀해 주신 것처럼 차학경을 많이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그런 분들, 그리고 차학경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거나 작업을 하셨거나 그런 분들은 싹 다 불러 모았어요. 의미 있었던 건 제 지인 중에서도 차학경을 몰랐는데 이 공연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고요.


양효실 : 그러니까 컬트죠 정말 이건. 그런데 이게 재접합되는 방식들에서 이 공연이 갖는 어떤 사건성이 있는 것 같고, 만약 비교문학과가 아니었으면 아무래도 원전이 훨씬 더 지배력을 갖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윤주 님께서 굉장히 풍부한 인적 자원들을 무보수로 이용하셨는데. (웃음) 다른 분들도 차학경 연구를 하시나요?


이혜목 : 저는 석사학위 논문을 쓸 예정입니다.


손효빈 : 저도 차학경이 메인은 아니었지만, 관련해서 개인 작업을 하기도 했고요.


양효실 : 일단은 《딕테》가 메인인 부분이 있었던 것 같고, 그리고 저한테는 ‘이 공연이 굉장히 탈권위적인 방식으로 자유롭게 노네’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대본에서 논문의 형식으로 인용되어 있는 텍스트들이 있잖아요. 그 텍스트들이 굉장히 적절하게 잘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샤먼의 복화술에 관한 텍스트, 언어학적인 또는 정신분석학적인 텍스트들이 적재적소에 굉장히 잘 배치된 것 같아요. 복화술이라는 개념도 지금은 일종의 서커스적인 능력으로서만 퇴화 혹은 박제화되었는데, 그게 갖고 있는 훨씬 더 넓은 맥락들을 소환하고 있고. 요즘 무당 콘텐츠가 공중파를 완전히 장악했잖아요. 이것도 증상이란 말이에요. 이 비인간 행성 시대에 ‘복화술’이라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가져오게 된 거예요?


오윤주 : 인문소극장에서 공연을 한 다음 파워플랜트 준비를 할 때 그 공간성을 더 고민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파워플랜트 공간 자체를 카메라 옵스큐라로 만들려 했거든요. 다 암막을 치고 문에만 옵스큐라를 설치해서 공간 내부에 어떤 상이 맺히게 하려고 했다가, 창문에 설치하는 것으로 바뀐 거예요. 그때 제가 하고 싶었던 건 그 공간 자체를 뱃속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어떤 자궁과도 같은 인큐베이팅의 공간이면서 동시의 죽음의 공간이고, 차학경을 위한 제의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공간성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복화술이라는 것은 그냥 갑자기 우연히 떠올랐는데, 《딕테》의 ‘말하는 여자(diseuse)’ 장면도 사실은 복화술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복화술의 기원을 찾아보니 고대에는 제의의 맥락에서 사용됐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낭독 퍼포먼스를 할 때 제가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이 언어의 물질성, 그러니까 언어라는 게 의미로서 전달되는 게 아니라 물질로서, 소리로서 전달될 때 그게 디아스포라적인 체험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샤머니즘적인, 주술적인 맥락도 같이 들어오는 거잖아요. 그 소리 자체가 어떤 정동을 생산하고 몸을 바꾸는 주술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차학경 혹은 역사 속의 어떤 다른 존재들을 받아 말하는 복화술의 퍼포먼스를 만들게 된 것 같아요.


양효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 떠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던 건, 차학경에게는 영어와 불어라고 하는 언어가 주이고 《딕테》 초반에 한국어가 딱 한 번 등장하잖아요. 그다음 아카이브는 다 산산이 부서져 있기 때문에, 이게 하나의 국적, 하나의 언어, 어떤 하나의 토포스로 환원되지 않는, 그냥 이미 부서져 있는데 더 철저히 부서지려고 하는 방식의 아방가르드적인 전략들이라고 했을 때. 언어 사이의 위계들을 놓고 본다면 이 공연에서 사용된 영어, 스페인어, 광둥어, 일본어, 몽골어 같은 언어들이 비교문학과에서는 평등하지만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미 그 안에 위계가 있고, 신식민주의 맥락이 들어오고, 또는 전 지구적인 어떤 불평등한 정치적인 맥락들이 들어오는데. 이런 언어들이 그냥 평등하게 배치된 느낌이 들어서, 그래서 공연 말미에 정치적 색채가 필요했던 것 같다는 생각도 좀 들었어요. 차학경에게 잔 다르크와 유관순, 80년대 광주와 일제 시대가 들어오고, 어머니의 기억과 자신의 첫 장면이 들어오듯이. 《딕테》에서 ‘말하는 여자’라는 건 샤먼이기도 하지만 또 먼 외국에서 온 소녀이기도 하고, 이 소녀가 어떤 경험을 했을지 전혀 이야기하지 않으니 상상도 할 수 없죠. 그러다 보니 도대체 이 소녀는 누구냐, 누구나 가져다 쓸 수 있고 어떤 국적, 어떤 정체성에도 들어오지 않는 그 텍스트가 한국에서 공연된다고 할 때의 딜레마는 혹시 없었어요?


오윤주 : 너무 있었죠. 사실 그런 지점이 처음부터 계속 고민이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에서 공연이 된다는 맥락을 고려했을 때 다언어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한국이라는 장소 특정성이 있고 대다수의 관객이 한국인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고 했을 때 한국인에게 한국어가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들릴 수 없는 공연이었으면 좋겠다. 그게 한국인들에게 어떤 디아스포라적인 체험을 전이시키는 것이기도 하고 소외의 감각을 전달하는 것이기도 한데.


양효실 :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이 배우들이 아이들이 되었잖아요. 이 아이들이 비행 청소년이 아니고 좀 말랑말랑한 아이들이다 보니 좀 약화된 지점도 있었지 않나 싶어요. 물론 차학경의 서정, 부드러움, 어머니와의 라포 속에서 진행되는 멜랑콜리한 정동이 있지만요. 다언어적이긴 하지만 흰 옷을 입은 아이들이 그런 서정을 강화시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구한 아이들이라는 느낌이 들고, 그런 지점에서 오히려 2016년 이후의 정동과는 또 약간 상충되지 않나 하는 생각들.


손효빈 : 저는 이번 파워플랜트 공연 때부터 함께하게 되었으니, 전작을 보고 피드백을 드렸던 것 중 하나가 흰 옷, 그리고 아이들이 뭔가를 배우고 있는 상황을 왜 계속 만들려고 하는지가 의문이 남았던 것 같아요. 아이들을 활용하고 싶었던 것이 그 언어를 익히는 단계로서 재현하려는 건 알겠지만 너무 쉬운 선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계속 하기는 했었거든요.


오윤주 : 이런 의견은 미술 팀에서 많이 주셔서 저도 알고 있었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착하고 무구한 아이들을 만들고 싶었다기보다는 제의라는 맥락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양효실 : 근데 아이들은 제의에서 희생양이잖아요. 그런 클리셰가 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혐오스러운데 눈물이 나는 그런 감성이 약간은 투사가 되긴 했었거든요. 근데 이제 그런 아이들이 아예 마음에 안 든 건 아니었어요.


손효빈 : 그래서 의상을 논의할 때, 서로 다른 곳에서 온 아이들이 뱃속으로 들어온 상황이라면 사실 평상복을 입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어요.


전희영 : 사실 미술 팀이 정말 포기할 수 없는 지점이면 끝까지 밀어붙였을 텐데, 결국 저희 생각에는 대본 팀이 스스로 선택한 의상을 입는 게 가장 맞다고 생각해서 그냥 흰 옷을 선택하게 두었어요. 근데 결국에는 연출의 취향이기도 했던 것 같고, 차학경의 퍼포먼스 사진들을 보면 흰 옷의 각인이 너무 뚜렷하게 되잖아요. 그런 것들이 무의식중에 작동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오윤주 : 제가 차학경 연구자로서 살짝 또 변명을 하자면, 흰색이라는 색상에 문화적으로 투사되는 역사적인 관점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차학경이 그런 역사적인 관점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차학경이 흰 옷을 사용할 때 분명 어떤 무구함, 순수함, 깨끗함 같은 가치들도 투사되겠지만 제가 봤을 때는 샤먼, 그러니까 한국 무속이라는 맥락이 사실은 더 강하게 표출된다고 생각이 되고, 특히 그게 차학경이 백지, 흰 종이를 사용하는 방식과도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양효실 : 그러니까 2026년 이곳에서 차학경을 전유하고 해석한다고 했을 때, 굉장히 많은 수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은 차학경을 가져온 거니까, 얼마나 차학경을 숭배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오윤주 : 처음 이 공연을 기획했을 때부터 차학경을 위한 제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요.


양효실 : 그렇죠. 사실 그동안 우리가 차학경 애도를 제대로 했다고 보기는 힘들죠.


오윤주 : 차학경을 위한 제의라는 맥락과 함께 사실 차학경을 수행한다는 맥락도 있었고요.


2026.01.17 서울대학교 제1파워플랜트 〈뱃腹속話말術〉|사진 : 손다니엘


2026.01.17 서울대학교 제1파워플랜트 〈뱃腹속話말術〉|사진 : 손다니엘


양효실 : 차학경 이후의 어떤 세대 혹은 지역 혹은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서 이렇게 재조립되는 거죠. 그 과정 중에 점점 더 이렇게 어린 작가들과 만나면서, 지금 비슷한 나이 또래가 됐죠? 그러면서 차학경에게 씌워졌던 갑옷들이 조금 헐렁해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것이 저에게는 대단히 만족감이 들었다는 거죠. 차학경에 대해서 기존의 박제화된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되어 왔던 과정들이 있었고, 한편으로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도 들지만. 제가 《유령 연구》를 읽으면서 비로소 처음으로 한국 전쟁을 다시 제대로 겪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왜 그렇게 과거에 집착하느냐, 혹은 왜 그렇게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느냐고 할 때 사실은 한 번도 그 과거를 제대로 대면해 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지점에서 여러분이 차학경이 너무 좋다, 차학경을 떠나보내지 못하겠다고 할 때, 82년에 돌아가시고 지금 사십몇 년이라는 시대적인 간극을 뛰어넘어 접속하는 그게 뭐지? 계속 물어보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왜 좋아하지? 이분이 51년생이니 거의 여러분의 할머니 정도일 수도 있는 분인데. 이게 감각적으로 직관적으로 본능적으로 여러분에게 좋은 거잖아요. 이번 공연에 관객이 몇 명 정도 왔죠?


오윤주 : 양일 각 100명 정도씩 오신 것 같아요.


양효실 : 그러면 진짜 어마어마한 숫자란 말이에요. 저는 차학경의 《딕테》를 읽을 때 맨 앞에 ‘그날은 첫날이었다’ 이 두 장이 저에게는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하는 완전히 충격적인 경험이었어요. 어떤 경험에 대해서 그것을 이렇게 번역하다니 하는 충격, 지금도 충격이고요. 그래서 차학경은 다른 어떤 텍스트보다 만나자마자 나를 망치로 때리면서 동시에 몰랐던 걸 알았다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게 이런 식으로 깨달아질 수 있다는 그 지점에서 충격이었는데. 이건 다시 읽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 지점이란 말이에요. 그리고 영어와 불어로 쓰인 글을 읽으며 제가 거기서 저 자신을 발견한 것도, 저에게는 《딕테》가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지 않은 텍스트, 그날의 나로 계속 돌아가게 하는 텍스트인데. 그 경험을 위한, 또는 그게 어떤 경험이었는지를 제대로 알려 주는 텍스트이기도 하고요. 차학경의 영향력이 미국에서는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 같은데, 차학경이 미국에서 소화되는 방식과 한국에서 소화되는 방식은 분명히 다르잖아요. 그런데 이 담론이 양쪽에서 같은 것처럼 이야기된다든지, K-문화가 세계에서 소비되는 것에 대해 한국에서 그 위대함을 이야기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엄청나게 크듯이. 그러니까 한국어로 쓰인 텍스트가 아닌 텍스트에 이렇게까지 우리가 빠져드는 이유가 뭘까? 지금 논문은 한국어로 쓰나요?


오윤주 : 제가 곧 UC 버클리에 방문연구원으로 파견 가게 되어서 아마 영어로 쓰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UC 버클리 미술관(BAMPFA)에서 회고전 중이기도 하고요.


이혜목 : 저는 지난주에 회고전에 먼저 다녀왔고, 윤주 님은 이번 주에 가세요.


양효실 : 와, 초시간성이네요 진짜. 어땠습니까?


이혜목 : 너무 좋았죠. 미공개된 영상도 보고 아카이브도 열람하고 왔는데요. 저는 시적이면서 정치적인 텍스트, 그러면서 감각적으로 좋은 텍스트를 계속 찾아 헤매었던 것 같은데, 《딕테》를 읽었을 때 그게 바로 만족이 된 느낌이었어요. 한국어 번역본으로 읽었어도 뭔가 이건 좀 다르다는 것이 바로 느껴졌고, 계속 읽게 되는 마력이 있었어요. 그런데 읽어도 읽어도 이해가 잘 안 되니까 계속 들여다봐야 하고, 그러면서 이분이 이 책만 쓴 게 아니라 다른 작업들도 했다는 걸 알게 됐고요. 이번에 회고전에 가서 알게 된 것이, 《딕테》를 쓰시기 전에 작은 책자나 아티스트북들을 굉장히 많이 만드셨더라고요. 그런 아티스트북들과 영상 작업과 《딕테》라는 책이 다 연동되어 있어서 너무 신기하고 놀라웠고요. 또 제가 놀랐던 것은 저희 공연에서 종이를 이용한 퍼포먼스를 한다든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만 말하는 장면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장면들을 차학경이 미공개 퍼포먼스에서 썼더라고요. 그걸 알고 만든 것이 아니었는데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신기했어요.


오윤주 : 기존에 차학경을 연구해 오신 선생님들은 요즘 왜 이게 또 붐이냐고 궁금해하시고, 또 차학경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까지 좋아하냐는 것을 보통 궁금해하시는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 혜목 님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너무 개인적인 이유로 빠지게 되었는데.


양효실 : 한국에서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좋아하는 현상이 아이돌 팬 문화 말고 엘리트 아방가르드 문화에 있었나 싶어요. 전혜린 현상이 있긴 했지만. 그런데 요즘 쇼츠에 다 정리되어서 나온단 말이에요. 아이돌 팬 문화 말고 예술가에 대해서 우리에게 이런 문화가 있었나요? 차학경을 광적으로 평생을 연구하는 그런 사람들도 생기고. 여러분 같은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차학경이 이렇게 한국에서 컬트가 되는 과정이 뭘까, 그런 질문들이 생겨요.


오윤주 : 차학경이 미국에서 수용된 역사를 봤을 때는 처음에는 엘리트 문학계 미술계에서 소환이 되었다가 아시안 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또 부상이 된 역사가 있는데, 한국에서 차학경이 소환될 때는 사실 많은 것들이 그렇듯이 그냥 역수입되어서 들어오는 방식도 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양효실 : 네, 그건 아닌 것 같거든요. 어떤 개인적인 애정, 어떤 마주침, 만남들이 소소하게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오윤주 : 제 생각에는 한국이 어쨌든 제3세계라고 하는,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한국어라고 하는 소수 언어를 다루면서 소수 언어로 예술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독자로서도 그렇고, 일단은 이런 한국계 작가가 있다는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이라기보다 ‘이게 가능하다’라는 것에 대한, 아까 혜목 님도 말씀하셨지만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라고 하는 일종의 제3세계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지평을 너무나 넓혀 준 사람이잖아요. 그러면서도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어떤 집단 무의식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사실은 너무나 트라우마적인 방식으로 몸을 통해서 되살아나게 하는 텍스트다 보니까, 그런 어떤 공동의 것이 있지 않을까.


양효실 : 그러니까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지점이죠. 그래서 증상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게 2016년 이후의 정동과도 어떻게 결탁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오윤주 : 저는 완전 있다고 생각해요.


양효실 : 2016년 이후에 메인 스트림의 정동은 아니지만, 다양하게 붕괴되는 온갖 종류의 것들이 있다고 했을 때, 국뽕 같은 것이 분명히 들러붙어 있는 지점이 있긴 있는데 그건 너무 약한 부분이고. 또 예술가들에게는 문화적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들이 그렇게 강력하게 작동하지 않기도 하고요. 차학경은 특히 한국계라고 잘 이야기되지 않는 지점도 있고, 더구나 강간 살해당한 여자라는 부분이 동일시를 약간 경계하게 하는 지점이 있는데, 지금 기꺼이 끌어들이게 되는 지점은 캐시 박 홍과 강남역도 분명히 연동되는 지점들이 있지 않나. 미국의 주류 문화나 언니들은 그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고, 그걸 할 수 있게 해 준 2016년 이후 정동 속에서 차학경을 만나는 방식은 분명히 다를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이번 퍼포먼스에서 그런 지점들이 들어왔는가 묻는다면 그건 완전히 색이 달라질 테니 힘든 부분이기도 하고요. 지금 이런 여러 가지가 엮여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때가 되어서, 어떤 때와 만나서 이런 공연이 되었는지. 이 문화 속에서의 차학경은 원본으로서의 차학경은 아니고, 우리 시대에 끊임없이 수정되고 있는 그런 차학경 중에 하나일 것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이 차학경을 개인적으로 만난 지점들이 여기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 모든 얼굴들을 다 비춰 주는 흐릿한 거울로서의 차학경. 이건 정말 어마어마한 거죠. 집단적 무의식이라는 표현이든, 본인이 정말 사라지는 것, 사라짐의 정치와도 연결되는 지점들이 있는 거잖아요. 시각예술 쪽에서는 어떤 것 같아요?


전희영 : 차학경에 쉽게 확 스며든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트라우마나 자신의 역사와 얽히면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 그런 광적인 사람들이 있는 반면 사실 굉장히 차갑게 보는 시선들도 분명히 있잖아요. 이런 사람들은 여전히 《딕테》를 그냥 하나의 책으로 보는 인식이 있는 것 같고, 좀 더 시각적인 요소들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것 같고요. 동시에 아직은 미술계에서는 국내 문학계처럼 차학경을 환영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지만…


오윤주 : 근데 사실 국내 문학계가 차학경을 환영한다고 말하기도 어렵긴 하죠.


양효실 : 그러니까 여러분이 마치 한국의 전부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우리의 내밀함이 있는 거죠 지금. 사실 진짜 극소수인데 우리끼리는 너무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


전희영 : 그런데 뭔가 필요성이 있다고 한다면, 요즘 미술 현장의 흐름이 제가 느낄 때는 텍스트 기반이 아니라 훨씬 이미지적으로 흘러가고 있잖아요. 말을 더 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또다시 사람들이 차학경을 다시 보고 갈구하게 되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양효실 : 그렇죠, 지금 완전히 이미지 남발이죠. 그러니까 허공에 대고 무언가 하고 있는, 완전히 우주의 미아 같은 느낌들. 그거랑 이건 완전히 다른 거죠. 그건 적절한 지적인 것 같아요. 이미지가 너무 많고 컨텍스트가 없고 유영하고 있는 그런 느낌과, 지금 이 공연은 컨텍스트가 굉장히 강력한데 그걸 텍스트성으로서만 전유하는 아주 특이한 경우니까. 공연 마지막 장면에서 대본을 찢잖아요. 그걸 호롱불 아래에서 제의적인 방식으로 연결하는데. 그러니까 말씀을 찢는다는 것, 만약 성경이나 쿠란이었으면 태형을 당할 텐데. 그 장면은 어떻게 만들어진 거예요? 전작에서도 바닥에 종이가 흩뿌려지는 것 같은 느낌은 남아 있는데, 그것도 좋았는데.


오윤주 : 파워플랜트에서 공연을 다시 올리면서 꼭 들여오고 싶었던 지점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부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것이 제의이자 굿판이다 보니, 이곳에 오신 분들이 굿을 보러 온 참가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에 했고요. 사실 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대본도 다 한지에 인쇄해서 저희가 직접 실 제본을 했고, 호롱불 소품도 직접 만들어서 달고, 이런 과정들부터가 사실은 무구(巫具)를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또 저희가 공연에서 대본을 보고 읽는 테크니컬한 지점이 있으니, 그걸 어떻게 시각적으로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을 때 차학경이 《딕테》에서 백지와 흰색을 사용하는 방식을 가지고 오고 싶었어요. 흰 종이들이 눈처럼 쌓이고 덮여서 결국 보이지 않게 소멸해 가는, 비워 내는 그 방식을 가지고 오고 싶었고. 왜냐하면 그것이 한국 무속에서도 흰 종이가 사용되는 방식이거든요. 어떤 신성한 존재이면서 결국엔 태우고 소각되어야 하는. 그러니까 굿을 하는 동안, 그 한순간에는 신이나 망자를 싣지만 끝나고 나면 소각해야 하는 것. 그래서 공연을 하면서 대본이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뜯어 바닥에 흩뿌렸고, 마지막에는 바닥에 떨어진 대본을 모두 모아 호롱불 아래서 찢어 소각했어요. 이때 관객들을 불러 모아 함께 찢거나 매듭을 지었고요.


양효실 : 배음(背音)이네. 배음으로 존재하는 거네요. 명시적인 컨텍스트 없이 들어와 버려서 여전히 무너지고 있는 장면이긴 한데, 사실은 굉장히 단단한 샤머니즘의 배경들이 그렇게 부분적으로 인용되는 거네요. 저도 마지막에 매듭지으면서 절했어요.


오윤주 : 네, 봤어요. 그 장면 전에 저희가 종이를 들고 퍼포밍하는 장면도 있었는데, 그건 대본 워크숍하면서 나온 장면이거든요. 중간에 하차하게 되셨지만 태국인 선생님이 계셨어요. 태국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 오신 샘이었는데, 시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중화권의 시위 맥락도 같이 들어오게 됐어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를 단지 드는 것만으로도 정치적인 선언을 하게 되는 맥락이 저희가 하고자 하는, 그리고 차학경이 하고자 했던 말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이 되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훨씬 더 강력한 정동을 불러일으키는 지점과 정치적 맥락을 같이 엮어 보려 했습니다.


2026.01.17 서울대학교 제1파워플랜트 〈뱃腹속話말術〉|사진 : 김조안


2026.01.17 서울대학교 제1파워플랜트 〈뱃腹속話말術〉|사진 : 김조안


2026.01.17 서울대학교 제1파워플랜트 〈뱃腹속話말術〉|사진 : Jonathan Lee


양효실 : 그러면 이 공연이 사실 굉장히 두터운 텍스트네요. 사실 언어적인 것과 이미지적인 것이 같이 들어왔지만 이 경우에는 파워플랜트라는 장소가 너무 힘이 세서 어떤 것으로도 잘 덮이거나 해석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어요. 장소성이 구분이 안 되면서 이쪽저쪽에서 빨아들이고… 퍼포먼스를 하기엔 아주 비타협적인 그런 공간이었는데, 어느 순간 집중하고 있는 나를 보기도 했고요. 저쪽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다 다시 나오는, 퇴장하는 건지 입장하는 건지 모르게 그렇게 끝나는 공연이었는데. 그림자놀이도 참 좋았고요. 전 언어적이고 퇴행적인 유아, 무덤-자궁의 맥락들… 주변 관객들로부터의 피드백은 있었나요?


전희영 : 제 생각에는 또 이 내부에서의 이야기가 중요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땠는지가 좀 궁금해요.


오윤주 : 공연이 끝나고 이야기 나눈 분들도 있었고, 인스타그램 같은 창구로 메시지 주신 분들도 있었는데요. 사실 작년 인문소극장 공연 때부터도 그랬지만 원래 차학경을 좋아하고 잘 아시는 분들은 본인들이 알고 있는 어떤 레퍼런스가 발견될 때 그것들을 굉장히 좋아하신 것 같고, 또 아예 모르는데 오신 분들 같은 경우는 어떻게 보셨을지 좀 궁금했는데요. 외국인분들 같은 경우에는 본인의 모국어가 들리면 굉장히 기뻐하시거나, 잘 모르더라도 본인의 체험과 맞닿아 있다 보니 감각이 직관적으로 와닿으시는 것 같더라고요.


전희영 : 또 지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때 만나게 된 연극하는 분들이 이번 공연을 보러 와 주셨는데요. 그분들은 차학경을 잘 알기보다는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있어서 오게 되셨는데, 확실히 연극하시는 분들이 저희보다 대본이나 무대 장치와의 연결점 같은 것들을 더 연극적으로 잘 읽어 주시더라고요. 사실 저희가 의도하지 않은 부분까지 좋게 봐 주신 것도 있었고. 그래서 그때 느꼈던 것이 연극하는 분들은 그냥 무언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환상 자체에 쉽게 매료되시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특히 외국인분들과 같이 했다는 것에 대해서 많이 반응들을 해 주셨고요.


양효실 : 배우들과 같이 작업하는 건 어땠어요?


손효빈 : 이게 어쨌든 낭독극이잖아요. 대본이 있고 그걸 연기해야 하는 상황인데 여기 오신 퍼포머들이 다 자신의 말을 하지만 전문 연기자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미술 팀 사람들은 좀 헷갈렸던 것 같아요. 이 퍼포먼스가 낭독일까, 연기일까, 발화일까?


양효실 : 사실 배우가 보이는 게 아니라 인간이 보이는 느낌이기도 해서. 그러면 앞으로 이 프로젝트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고, 계속 어떻게 이어질지 열려 있긴 하지만 확정된 건 없는 거네요. 윤주 님이 버클리에서 또 무언가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오윤주 : 네, 맞아요.


양효실 : 배우들끼리의 대담은 또 따로 진행될 예정이죠? 거기서 또 이야기 들어 보고 종합해야 할 부분들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참석자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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