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間지〉 2026 봄호 | 인터뷰

지만지드라마에서 10년째 입센 드라마를 번역해 오신 조태준 교수님의 번역 세계를 서포터즈 채원의 시선으로 담았습니다.

희곡과 무대, 그사이의 언어에 대해 묻고 답한 기록을 전합니다.

채원(노라조 1기)

캘 채(采), 멀 원(遠). 깊이 숨겨진 행복까지 발견해 멀리 전한다는 이름의 뜻처럼 희곡의 다양한 매력을 발견하고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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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6. 04. 02. 목

장소 | 커뮤니케이션북스

인터뷰어 | 윤채원(노라조 1, 2기)

인터뷰이 | 조태준 교수님


채원

희곡을 번역하다 보면 원문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단어 선택에 공을 많이 들이실 것 같아요. 그럴 때 사전적 정의에 근거한 해석과는 조금 거리가 있더라도, 원문의 의미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우리말 단어를 선택하시나요? 아니면 직독직해와 같이 사전적 의미에 근거하여 원어를 충실히 해석하려고 하는 편이신가요?


조태준 교수님

“가능한 한 원문에 충실하려고 노력해요” 

희곡의 경우, ‘지문’이라는 기능적 언어와 ‘대사’라는 캐릭터의 언어가 있어 접근법이 조금 다르긴 합니다만, 희곡에서 중요한 건 캐릭터잖아요. 예시로, 도긴개긴이라는 말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말을 평상시에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분명히 있거든요. 그래서 작품 내에서 이 인물이 그런 말을 쓸 수 있는지, 없는지 “이 인물이 정작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충실한 번역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원문에 충실하기와 우리말 표현 찾기는 최대한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채원

처음 희곡 번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조태준 교수님

“연출 입봉작을 손수 번역하며 시작하게 되었어요”

1997년에 우리극 연구소에서 제작한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유령소나타>라는 작품으로 연출을 시작했는데, 막상 이 작품을 하려고 보니 번역본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번역을 하게 된 거죠. 희곡 번역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야 이건 다른 문학들과는 좀 다르다. 이건 좀 다른 언어의 세계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원문에 충실한 것, 캐릭터를 생각하는 것 역시 그때부터 어렴풋이 시작됐던 것 같아요.


채원

희곡 번역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나 주의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조태준 교수님

“희곡은 그 자체로 완결된 문학 작품이면서 동시에 공연을 위한 간텍스트라는 점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 희곡이 가지고 있는 내러티브에 편견 없이 다가가려고 노력해요. 사전 정보 없이, 편견 없이 읽는 거죠. 최대한 희곡이 주는 자연적인 울림에 노출되고자 하고, 내러티브의 근간인 갈등의 성격, 인물 관계, 정황 등을 포착하는 데 주력하는 편입니다. 그런 연후에 정독을 통해 각 인물의 언어 세계에 몰입하곤 하죠. 희곡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캐릭터의 언어기 때문에 두 번째 볼 때는 이 인물이 어떤 말을 하는지, 저 인물은 어떤 말을 하는지, 같은 말을 해도 이 인물이 말할 때와 저 인물이 말할 때 서로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는지 파악하려고 해요. 그런 다음에 번역할 땐 다시 맨 처음 통독했을 때 느껴졌던 전체적인 분위기나 느낌을 잊지 않고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편입니다.


채원

희곡 번역 작업을 하며 가장 뿌듯하거나 즐거운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요?


조태준 교수님

“희곡이 무대화되는 순간이요”

희곡은 번역하면서도 캐릭터의 언어를 생각하게 되고, 배우의 움직임이나 말투 등을 머릿속에 그리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배우의 입을 통해 텍스트의 언어가 공간의 언어로 바뀌는 순간이 가장 감동스러우면서도 뿌듯한 순간인 것 같아요.


채원

교수님이 생각하시기에 타 문학과 다른 희곡만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조태준 교수님

“채움을 위한 비움의 텍스트라는 점 같아요”

안느 위베르스펠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흔히 ‘구멍 뚫린 텍스트’라고 하죠. 희곡은 언어를 매개로 하면서 의미와 서술을 최대한 절제한(억제할 수밖에 없는) 텍스트인 것 같아요. 성긴 그물처럼요. 그러나 한편으로, 희곡은 독자의 상상력과 공연을 통해 다양한 이미지와 의미 세계를 지향하는 마성의 텍스트이기도 합니다. 그 그물로 다양한 물고기 낚는다고나 할까요? 어찌 보면 빈 부분 때문에 독자로서 느껴지는 당혹감도 있지만, 한편으로 굉장히 생산적인 글 읽기가 가능한 텍스트가 바로 희곡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채원

지만지드라마에서 입센의 작품들을 번역하고 계시는데요, 교수님이 생각하시기에 입센 작품의 유독 두드러지는 특징이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조태준 교수님

“표현하자면 ‘사이(間)’의 언어에 충실한 작품 세계라 생각해요”

제가 느낀 입센의 특징은 사이의 언어에 굉장히 예민하다는 점이에요. 사람과 사람 사이, 이곳과 저곳의 사이, 과거와 현재의 사이 이런 ‘사이’들에 굉장히 예민해 보여요. 더욱 인상적인 것은 “네가 한 그 말과 내가 하는 그 말 사이”의 간극을 드라마틱하게 보여 준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인형의 집> 속 ‘헬메르가 말하는 행복과 그 단어를 발설조차 하지 않으려는 노라의 모습’에서도 언어의 이면에 내재한 예민한 삶을 목격하게 되는 즐거움이 있죠. 입센의 작품에서는 ‘이 사이의 언어’라는 것이 어떻게 작동이 되는지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 인생에서 흔히 말하는 현재라는 건 과거라는 원인의 결과이자, 미래라는 결과의 원인이기도 하잖아요. 이런 사이에 관한 것들까지 담백하게 펼쳐 놓은 연극이 아마 입센 드라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채원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혹은 강렬하다고 느낀 희곡 속 인물과 작품이 있다면 누구일지, 어떤 작품일지 궁금합니다.


조태준 교수님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브레히트의 <쓰촨의 착한 사람>의 센테예요. 인간의 본성, 참된 인간관계와 선(善)에 대한 인식, 삶의 모순 등을 되돌아보게 해 준 문제적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아끼고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브라이언 프리엘의 <루나사에서 춤을>인데요, 번역하는 과정에서 정말 심혈을 가장 많이 기울이고 연극하는 마음까지 충실하게 얹어서 번역한 작품이에요. 무엇보다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 같은 작품이라 참 좋아합니다. 직접 연출까지 했던 작품인데, 번역하며 상상하고, 가늠했던 무대의 질감과 실제로 무대에서 벌어진 것이 거의 일치해서 참 감동적이었어요. 공연 당시, 커튼콜을 하기 위해 무대 위에 모든 배우가 등장했을 때 기적의 극작이 무대에서 완결되는 듯한 희열을 느꼈던 작품입니다. 지금도 제일 아끼면서 연출도 다시 도전해 보고 싶은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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