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間지〉 2026 봄호 | 틈새 극장
여러분이 들려주신 사연을 바탕으로,
서포터즈 보경이 마음과 깊게 닿아 있는 희곡의 대사와 장면을 골라 정성스러운 편지 답장을 전해 드립니다.
그 첫 번째 편지를 띄웁니다.
보경(노라조 2기)
희곡에 익숙한 독자는 아니지만, 그래서 더 처음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함께 알아가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습니다.
부담 없이 읽히지만 오래 남는 장면을 전하고 싶습니다.
[틈새 극장] 오늘, 당신의 마음엔 어떤 대사가 필요한가요?
오늘의 사연
❊
지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휴직 상태로 지내며 자괴감과 고독함이 극에 달했습니다.
친구를 만나는 것도, 좋은 옷을 입거나 맛있는 밥을 먹는 것도 제 처지에는 맞지 않는 사치처럼 느껴졌어요.
하지만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시간을 지나온 모든 분께, 당신은 존재만으로 소중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당신 곁의 파랑새에게
❊
사연자님, 안녕하세요. 에디터 보경입니다.
사연을 읽으며 제 마음이 가장 아프게 머물렀던 문장은 "친구들과 만나는 것은 처지에
안 맞는 놀고먹는 행위 같아서 꺼려졌다"는 대목이었어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연자님은 스스로를 작은 새장 같은 방에 가두셨던 것 같아요.
'일을 하지 않는 나'에게는 좋은 옷도, 좋은 밥도, 누군가와의 따뜻한 대화도 허락되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벌을 스스로에게 내리면서요.
사실 저도 사연자님과 비슷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어요.
대학교 1학년 초반이었는데, 주변 친구들은 벌써 대외활동을 시작하거나
자격증을 따며 앞서나가는 것 같더라고요.
정작 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거든요.
그럴 때면 마음 편히 쉬는 것조차 꼭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남들은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만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멈춰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스스로를 참 많이 괴롭혔던 기억이 나요.
우리는 흔히 어떤 자격이나 성취를 갖추어야만 행복해질 권리가 생긴다고 믿곤 하잖아요.
<파랑새> 속 틸틸과 미틸이 '행복의 비밀'을 풀기 위해
신비로운 나라들을 탐험해야만 했던 것처럼요.
우리도 "취직만 하면", "합격만 하면" 그때 비로소 파랑새를 손에 쥐겠노라 다짐하며 지금의 일상을 희생하곤 하죠.
하지만 사연자님, 저는 믿어요.
그 고독했던 시간들이 단순히 사연자님을 갉아먹기만 한 건 아닐 거라고요.
오히려 그 길고 긴 터널을 지나오셨기에,
남들은 무심코 지나치는 아주 작은 빛줄기 하나도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채는
'특별한 눈'을 갖게 되신 건 아닐까요?
사연 끝에 적어주신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고유한 당신, 당신은 존재만으로 소중해요"라는
문장을 보고 저는 확신했어요.
아, 이분은 결국 자기 마음속에서 가장 눈부신 파랑새를 찾아내셨구나, 하고요.
틸틸과 미틸이 온 세상을 다 뒤져도 못 찾았던 파랑새를
결국 자기 방 안에서 발견했던 것처럼 말이에요.
이제는 '내 처지가 이래서'라는 말로 사연자님의 예쁜 마음을 가두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오늘 점심에 먹은 맛있는 밥 한 끼, 창가로 스며드는 따뜻한 봄바람,
그리고 친구와 나누는 시시콜콜한 수다까지.
그 모든 소소한 순간들이 사실은 사연자님이 당연히 누려야 할, 사연자님만의 파랑새들이니까요.
희곡 속 틸틸은 여행에서 돌아와 외쳐요.
"왜 이렇게 모든 게 달라 보이지? 훨씬 더 예쁘고 반짝거려!"라고요.
방의 벽지도, 키우던 비둘기도 어제와 똑같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틸틸의 시선이 변하자 비로소 파랑새가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사연자님의 앞날도 틸틸의 방처럼 매일 조금씩 더 반짝이기를 바랄게요.
사연자님이 스스로를 응원하셨듯, 저와 이 <틈새극장>도 사연자님의 모든 발걸음을 온 마음 다해 응원하겠습니다.
2026.4
행복해질 '자격'을 따지느라 마음 편히 쉬지도 못했던 우리에게
벨기에의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쓴 이 작품은 가난한 나무꾼의 남매 틸틸과 미틸이
병든 이웃집 딸을 위해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환상적인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추억의 나라, 밤의 궁전, 행복의 궁전 등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파랑새를 잡으려 애쓰지만,
그 새들은 손에 닿자마자 죽거나 색이 변해버리고 맙니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와 잠에서 깬 틸틸과 미틸, 자신들이 키우던 비둘기가 바로 그토록 찾던 파랑새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행복은 거창한 성취나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 곁의 일상에 늘 존재한다는 진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고전입니다.
(자신이 키우던 멧비둘기가 파랗게 변한 모습을 보고 이웃집 여인에게 파랑새를 건네주고 나서)
틸틸 | (주위를 오랫동안 바라본 뒤에) 아빠, 엄마, 집에서 뭘 하셨어요? 집은 마찬가지인데 훨씬 아름다워요..
아빠 틸 | 뭐라고? 집이 훨씬 더 아름답다고?
틸틸 | 그래요. 모든 게 새로 페인트칠이 되고, 새롭게 단장이 되었어요.
모든 게 윤이 나고 깨끗해요...작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아빠 틸 | 작년에?
틸틸 | (창가로 가며) 또 저기 보이는 숲은! 크기도 하지. 아름답고! 저것도 새것 같아요!
여기선 참 행복해요! …
−《파랑새》 12장. 잠에서 깨어나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