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間지〉 2026 봄호 | Play-list

Play-list란?

희곡(Play)과 리스트(List)를 합친 이름으로, 서포터즈 정인이 희곡 한 편과 그 결이 닮은 문학, 음악, 전시, 영화 등을 큐레이션해 소개합니다.

정인(노라조 2기)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 이야기를 상상하는 사람. 끊임없이 무대를 세우고 허무는 희곡처럼 ‘열린 세계’로서의 예술을 전합니다.


4월의 Play-list

상실 위에 지은 집


선정작




키워드 ◌ 집, 부재, 상실, 회복, 삶



Track 01. 돌아오다

‘나’라는 집으로 돌아올 때 비로소 발견하는 것

희곡 〈나는 멀리서 돌아온다〉, 클로딘 갈레아



Track 02. 마주하다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흔적을 마주하며

영화 센티멘탈 밸류〉, 요아킴 트리에



Track 03. 함께하다

우리가 끝내 만들어갈 집에 대하여

소설 〈골목의 조〉, 송섬




#Play-list Note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떠남과 만남의 흔적이 쌓인 ‘나’ 자체이기도 하다. 4월의 [Play-list]는 ‘집’을 키워드로, 서로 다른 세 편의 작품을 하나의 길처럼 엮었다. 이 여정은 ‘돌아오다–마주하다–함께하다’라는 세 트랙을 따라 이어진다.


첫 번째 트랙 ‘돌아오다’에서는 외면해 왔던 ‘나’에게 다시 다가간다. 두 번째 트랙 ‘마주하다’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타인과 마주하며, 회복의 가능성을 향해 나아간다. 마지막 트랙 ‘함께하다’에서는 떠나고 돌아오는 존재들을 위해 ‘나’라는 집 안에 틈을 남겨 둔다.


우리는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또 찾게 될까?



Track 01. 돌아오다

‘나’라는 집으로 돌아올 때 비로소 발견하는 것

희곡 〈나는 멀리서 돌아온다〉, 클로딘 갈레아


<나는 멀리서 돌아온다> (AI 이미지)


〈나는 멀리서 돌아온다〉 는 어느 새벽 ‘카미유’가 집을 떠나고 돌아오는 이야기다. 남편 마크, 아들 폴과 딸 뤼시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부재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남겨진 가족은 집을 떠난다. 그리고 카미유는 먼 곳에서부터 집에 돌아온다. 이 희곡은 수수께끼 같은 진실을 숨기고 있다.


그 수수께끼는 책의 표지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멀리서 돌아온다 Je reviens de loin.’ 제목을 읽으면 궁금해진다. 왜 ‘돌아간다’가 아니라 ‘돌아온다’일까? 카미유는 남편, 아들과 딸을 남겨 둔 채 집을 떠났지만, 동시에 그곳을 떠난 적 없다. 그녀가 떠난 곳은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가족의 죽음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는 내면의 ‘집’일 수 있다. ‘돌아온다’는 것은 더 이상 연기할 수 없는 진실과 마주하는 일이다. 카미유에게 집은 다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시작점이 된다.


먼저 카미유가 물리적 공간인 집을 떠나는 이야기로 따라가 보자. 이때 남편, 아들과 딸의 반응을 살펴본다. 그리고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 이 세 명의 인물이 모두 카미유의 또 다른 목소리라고 상상하며 읽어 본다. 가족의 상실을 마주한 카미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마크: 엄마는 여행을 떠난 거야.

폴: 무슨 여행?

뤼시: 도망간 거야.

마크: 자신을 위한 여행. 자기 자신을 위해서.

p. 36


카미유는 가족의 죽음을 부정한다. 자신이 먼저 집을 떠남으로써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가족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진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집은 비어 있다. 부재를 마주하는 것으로부터 카미유의 삶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떠나고 싶다는 생각 해 본 적 없어?” (p.53)

어쩌면 우리는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건 아닐까? “우리가 여행을 떠날 땐 시간이 걸리는 일이야, 멀리 가야 해, 아주 멀리.” 남편 마크는 카미유가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힘들고 지쳐서, 혹은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아주 멀리 떠나 버린다면. 결국 우리에게 남는 건 하나뿐이다. 다시 돌아오는 일. 떠났던 거리만큼 뚜벅뚜벅 돌아오는 것. 그 길 끝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Track 02. 마주하다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흔적을 마주하며

영화 센티멘탈 밸류〉, 요아킴 트리에


<센티멘탈 밸류> 스틸컷


〈나는 멀리서 돌아온다〉 가 비어 있는 집, 즉 가족의 부재를 마주하며 끝난다면, 센티멘탈 밸류〉는 집에 남아 있는 흔적에서 시작된다.


영화의 첫 장면에 틈이 있는 집이 등장한다. 집이 미세하게 기울어지며 생긴 흰 벽의 균열. 아버지 ‘구스타브’가 집을 떠난 후 두 자매 ‘노라’와 ‘아그네스’에게 생긴 균열과도 같다. 시간이 흘러 노라와 아그네스는 배우와 역사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 아버지가 돌아왔다. 노라에게 영화의 주연을 맡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왜 그는 떠났을까?”

구스타브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머니를, 노라와 아그네스는 집을 떠난 아버지를 향해 묻는다. 그 질문은 집에 남겨진 틈과 같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끝내 답을 얻을 수 없다. 이해할 수 없음은 결핍과 불안, 절망으로 번져 간다.


질문의 방향을 바꿔 보면 어떨까? 누군가를 향한 질문은 나를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어떤 질문은 답보다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 설명할 수 없는 ‘왜’라는 물음은 타인을 향하는 동시에 나에게로 돌아온다. 어린 시절의 나는 무엇을 바랐는지, 지금의 나는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묻게 한다.


“누구에게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리를 내어 말했어요. 도와주세요. 더 이상 못하겠어요. 혼자서는 못해요. 나에겐 집이 필요해요.”

기도도 닮아 있다. 우리는 어제보다 나아지기를, 덜 아프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스스로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그 기도가 결국 나를 향하고 있었음을. 그때 기도는 비로소 대화가 된다.


어떤 물음은 끝내 답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그 물음을 붙잡고 있는 서로를 알아보는 일 아닐까. 이해할 수 없는 틈을 남겨 둔 채 조용히 손 내미는 일. 구스타브가 노라에게 내민 한 편의 시나리오처럼.


<센티멘탈 밸류> 스틸컷
 


Track 03. 함께하다

우리가 끝내 만들어 갈 집에 대하여.

소설 〈골목의 조〉, 송섬


<골목의 조>, AI 이미지


영화 〈센티멘탈 밸류〉에서 가족의 흔적이 남겨진 집이 등장한다면, 소설 〈골목의 조〉에서는 낯선 존재들이 오가며 스쳐 가는 통로로서의 집이 그려진다.


〈골목의 조〉에서 ‘집’은 머무는 곳이라기보다 누군가 들어오고 떠나는 흐름 속에 놓인 공간에 가깝다. 반지하 집, 그리고 창문과 통하는 비밀 골목까지. 집은 하나의 형태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시간과 기억, 안과 밖이 중첩된다. 그 틈 사이로 여러 존재가 드나든다. 고양이 두 마리, 벽에 나타난 그림자 유령 같은 ‘아저씨’, 그리고 우연히 함께 살게 된 ‘조’. 그들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곁에 머물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사라진다. ‘나’에게 남은 것은 끝내 이해할 수 없는 장면과 시간이다.


그러나 계절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나’는 집을 청소하기 시작한다. 고양이를 묻어 주고, 언제든 ‘아저씨’와 ‘조’가 찾아올 수 있도록 골목을 열어 둔다. 집은 누군가를 맞이하고 떠나보낼 수 있는 틈 그 자체가 된다. 결국 무언가를 영영 잃어버린다 해도 그 모든 흔적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나는 멀리서 돌아온다〉,  센티멘탈 밸류〉, 〈골목의 조〉는 모두 하나의 직선을 따라가지 않는다. 이야기 사이에 ‘틈’이 있다. 카미유가 집을 떠나 다시 돌아오기까지, 노라가 구스타브의 영화에 출연하기로 마음먹기까지, ‘나’가 사랑했던 존재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우리는 그 시간의 틈 속에서 각자의 상실을 떠올리게 된다. 잃어버리고, 마주하고, 끝내 발견했던 삶의 조각들 말이다.


“언제나 시간이 가만히 흘러서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 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결국 이동하는 것은 나였어. 그리고 이동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미아가 되지 않는 것이었고.” (p.212)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조차 버거운 순간들이 있다. 어쩌면 우리를 구하는 것은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상실과 부재 사이의 틈을 끝내 가로지르는 한 걸음일지도 모른다. ‘이해할 수 없음’을 온전히 껴안은 채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결국 ‘나’라는 집으로 돌아와, 타인과 나를 다시 마주하는 일이 아닐까.


이 세 편의 이야기가 그 여정의 또 다른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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