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間지〉 2026 봄호 | Play-list

Play-list란?

희곡(Play)과 리스트(List)를 합친 이름으로, 서포터즈 정인이 희곡 한 편과 그 결이 닮은 문학, 음악, 전시, 영화 등을 큐레이션해 소개합니다.

정인(노라조 2기)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 이야기를 상상하는 사람. 끊임없이 무대를 세우고 허무는 희곡처럼 ‘열린 세계’로서의 예술을 전합니다.


6월의 Play-list

◌ 고양이가 세계를 구한다 


선정작


희곡 ◌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책 ◌ 〈고양이는 어디에 살고 있을까〉

에세이 ◌ 〈고양이와 시〉




키워드 ◌ 고양이, 도시, 연결, 공존 



Track 01. 고양이와 사회

발견되지 않는 존재들

희곡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 조은주



Track 02. 고양이와 공간

도시의 숨겨진 지도를 따라서

〈고양이는 어디에 살고 있을까〉 , 아틀리에 호코



Track 03. 고양이와 나

모르는 채로 곁을 내어주는 

에세이 〈고양이와 시〉, 서윤후




#Play-list Note

이번 [Play-list]는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다. 첫 번째 트랙에서는 고양이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따라가고, 두 번째 트랙에서는 고양이의 움직임을 따라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바라본다. 마지막 트랙에서는 고양이와 함께하는 일상을 보여 준다. 고양이는 오늘도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구하고 있을까?


Track 01. 고양이와 사회

발견되지 않는 존재들

희곡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조은주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다룬다. 주목받는 젊은 작가 ‘지수’는 고립되고 소외된 아이들을 찾아다니는 길고양이를 화자로 소설을 쓴다. 소설 속 고양이는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을 차례로 구한다. 


지수는 정작 현실 속 타인에 무관심하다. 그녀는 학대당한 길고양이 ‘봉구’, 방임된 자매인 ‘우리’와 ‘우림’, 그리고 보호 종료 아동 ‘경태’의 삶을 가까이 마주하면서도 깊이 알려 하지 않는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존재들. 길고양이는 ‘길에서 산다’. 쉽게 눈에 띄지만 보호받지 못한다. 존재하고 있지만 서서히 사라지는 사람들과도 닮아 있다. 희곡에서의 ‘길고양이’는 보호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존재들의 형상이 된다.


길 위에서 살아가는 존재는 길을 잃지 않는다. 그 말은 이상할 만큼 단순하고 잔인하다. 보호받지 못하는 삶이 어느새 살아가는 방식이 되어 버린 상태.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는>은 그런 존재들이 늘 우리 곁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지수: (덤덤하게) 제가 그 사람을 알아야 슬프죠…. 그냥 남인데.” 

(p. 351)


어떤 존재는 쉽게 보이지 않아서 ‘없는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희곡을 읽어 가다 보면 ‘무관심’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우리는 종종 거리를 지나는 존재들의 삶과 죽음에 무감각해진다. 특히 ‘나’와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다고 여기는 존재에 대해서. 하지만 그 상태를 단순히 ‘무(無)’ 관심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겉으로는 어떤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무언가는 내상처럼 우리의 안에 고인다. 끈적한 그것은 쌓이고 쌓여 불현듯 튀어나온다. 나도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으로.


어쩌면 이 희곡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끝내 외면해 왔던 것들을 다시 마주하게 하는 이야기다. 지금, 이 순간에도 거리 한편에 웅크리고 있는 그림자 같은 존재들을.



Track 02. 고양이와 공간

도시의 숨겨진 지도를 따라서

고양이는 어디에 살고 있을까〉, 아틀리에 호코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카드


〈고양이는 어디에 살고 있을까〉는 싱가포르의 한 동네에서 길고양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탐구한 책이다. 프로젝트 그룹 ‘아틀리에 호코’는 직접 발로 걸으며 도시 속 고양이의 움직임과 거주 방식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책은 싱가포르의 주택 단지 구조를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고양이 동네로 들어가기’, ‘벽 없이 사는 법’, ‘고양이처럼 살기’ 등의 목차에서도 고양이를 바라보는 태도가 드러난다. 고양이 자체에 인간의 이야기를 덧씌우기보다, 고양이가 도시 구조물을 어떻게 활용하며 살아가는지를 관찰자의 시선에서 바라본다.


몸이 꼭 맞는 배수로에서 쉬고, 도로 경계석에 몸을 기대고, 두 벽이 만나는 L자 공간에 몸을 숨긴 채 잠드는 고양이들. 다양한 구조물은 고양이에게 쉼터와 통로, 집이 된다. 물리적인 벽 없이도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고 도시의 틈과 구조를 연결하며 살아가는 고양이. 그 모습에서부터 인간의 표준적 기준에 그치던 ‘거주’라는 개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인터뷰에서 아틀리에 호코는 “인간의 세계는 수많은 다른 세계들에 포개져 있는 작은 일부일 뿐”이라고 말한다. 책장을 덮고 나면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도시의 구조물들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우리가 사는 세계 역시 서로 다른 존재들의 삶이 겹쳐 함께 숨 쉬고 있는 공간은 아닐까?



Track 03. 고양이와 나

모르는 채로 곁을 내어주는 것

에세이 〈고양이와 시〉, 서윤후


출판사 제공 상세이미지


‘시는 나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동시에 기다리는 법도 일깨워 주었다. 고양이는 나에게 말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대신에 함께 기다려 주었다.’ 

_프롤로그 중에서 (p. 9)


〈고양이와 시〉는 고양이와 시, 그리고 ‘나’라는 알 수 없는 존재들을 오래 바라보는 에세이다. 몰라서 좋아하게 되는 것들, 영영 알 수 없을지라도 궁금해지는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양이와 시를 바라보는 일은 결국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된다. 작가는 시를 쓰고 고양이를 기르지만, 여전히 잘 ‘모른다’고 말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한 선명한 답은 없다. 다만 모르는 채 곁을 내어주는 것, 설명하려 하기보다 응시하는 것. 어쩌면 시와 고양이는 그런 삶의 태도를 넌지시 보여 주는 건 아닐까.


〈사이 횡단〉 챕터에서 작가는 집 안에서 사라진 고양이를 찾는 순간을 시의 ‘행간’과 연결한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고 생각했던 집 안 어딘가에 고양이는 숨어 있다. 고양이를 찾아 나서는 순간은 마치 행과 행 사이를 맴도는 일처럼 느껴진다. 해당 챕터를 읽으며 어느 날부터 집에 나타나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떠올랐다.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지붕을 얹은 나무 데크 아래, 좁은 틈으로 몸을 숨기는 고양이. 마당으로 나가는 문을 열면 담장 너머로 후다닥 사라지는 검은 그림자. 길고양이지만 집의 어떤 ‘사이’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이상하게 만든다. 시를 읽으며 행간을 상상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틈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작은 존재가 자꾸 궁금해진다.


그 마음은 잠깐 ‘나’에게서 벗어나게 되는 일과도 닮아 있다. 저 고양이는 어디를 가는 걸까? 무슨 생각을 할까? 끝내 다 알 수 없더라도 시선을 주게 되는 마음. 어쩌면 시를 읽는 일도, 고양이를 바라보는 일도 그런 기다림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Track을 마무리하며

고양이는 이야기 사이를 유유히 걸어 다닌다. 우리 사회를 엿보는 관찰자가 되고, 동네 이웃이 되며,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고양이는 늘 어딘가에 있다. 골목 끝을, 풀숲을, 방 한구석을 당당히 차지한 채로. 가끔은 식빵 자세로, 살랑이는 꼬리로, 조그마한 발소리로. 고양이는 오늘도 저마다의 속도로 세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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