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間지〉 2026 봄호 | 희곡 인 마이 포켓

희곡을 가까이에서 즐기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서포터즈 정인이 희곡 속 명대사를 소장할 수 있는 배경화면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희곡의 문장을 꺼내 보세요.

정인(노라조 2기)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 이야기를 상상하는 사람. 끊임없이 무대를 세우고 허무는 희곡처럼 ‘열린 세계’로서의 예술을 전합니다.


6월의 희곡 인 마이 포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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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행성

김마딘 지음

벨기에 물고기

레오노르 콩피노 지음/임혜경 옮김

하멜린

후안 마요르가 지음/김재선 옮김


사라의 행성〉

(2022 봄 작가, 겨울 무대 희곡집 수록)

김마딘 지음


사라 : 그러면 가 보자. 아무것도 없는 땅으로. 행성의 숨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나와 너의 행성으로

_p. 291


다른 행성에서 온 사라와 우주를 꿈꾸는 하진. 냉혹한 현실 속에서 두 사람의 자리는 점점 좁아집니다. 더 이상 발 디딜 곳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사라는 지구를 떠나려 하고 하진은 꿈꾸기를 포기합니다. 그럼에도 작은 희망이 남아 있습니다. 두 사람은, 그리고 우리는 결국 어떤 행성을 향해 나아가게 될까요?


1. 믿음에 대하여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보신 적 있나요? 영화감독을 꿈꾸는 ‘황동만’과 PD ‘변은아’는 <사라의 행성>의 ‘하진’과 ‘사라’를 떠올리게 합니다. 변은아는 아무도 믿어 주지 않던 황동만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황동만은 변은아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사라의 행성> 역시 ‘우주 어디엔가 내가 머물 수 있는 자리는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 세계에서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일. 앞으로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시 시작해 보려는 마음. 어쩌면 끝내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은 ‘나’와 ‘너’ 사이의 믿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 흔들림 사이에서

사라: 새로운 곳으로 도망치려고. 그거 말곤 방법이 없어. p.284


하진의 눈에는 늘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라 역시 끊임없이 흔들리고 갈등합니다. 그러나 사라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라의 행성>은 결국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자기 안의 무언가를 끝내 놓지 않는 사람들을 비춥니다. 이 희곡을 읽으며 우리 안에 아직 남아 있는 어떤 마음을 발견해 보는 건 어떨까요? 끝내 포기하지 못한 꿈은 무엇인가요?


3. ‘나의 행성’은 어디에?

막막한 현실 속에서도 함께한다는 것, 서로를 끝내 믿어 본다는 것. 우주 어딘가에 정말 나의 행성이 존재할까? 내가 머물러도 되는 자리가 있을까? 질문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그 행성은 멀리 있는 별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서로를 믿어 보기로 한, 두 사람의 그림자. 그 나란한 마음이 서로의 행성이 되어 주는 것은 아닐까요?



〈벨기에 물고기〉 

레오노르 콩피노 지음 / 임혜경 옮김


그랑드 므시외 : 널 침입자로 여겨서 미안해, 넌 그토록 힘들게 숨 쉬고 있었던 나의 부분이었는데.

_p. 77


<벨기에 물고기>에서 아가미를 가진 아이 ‘프티 피유’와 성 정체성을 숨긴 채 살아온 어른 ‘그랑드 므시외’는 서로의 상처를 마주합니다. 벨기에의 차가운 겨울 풍경 속에서 두 사람은 ‘다름’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워 갑니다.


1. 현실과 환상의 경계

아가미를 가진 아이, 물고기로 치르는 7일간의 장례 의식 등의 설정은 환상적으로도, 비현실적으로도 보입니다. 다만 그 안에는 차별과 상실, 성 정체성, 고립 같은 동시대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담겨 있습니다. 환상 같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어둠과 상처를 발견하게 합니다.


2. 타인과 ‘나’의 이야기

우리는 살아가며 얼마나 자주 스스로를 숨기고 있나요? ‘그랑드 므시외’와 ‘프티 피유’의 이름 자체는 문법적으로 어긋나 있습니다. 여성형과 남성형 형용사가 뒤섞인 이름처럼 두 인물 역시 사회가 쉽게 규정하지 못합니다. 각자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벤치에 앉은 두 사람. 낯설고도 묘한 만남은 타인과 세계, 그리고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3. ‘어린 나’와의 화해

이 희곡의 독특한 점은 등장인물에 ‘물고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눈물로 어항을 채운 뒤 그 안에 물고기를 풀어놓고, 7일간 밤낮으로 기르다가 마지막에는 튀겨 먹는 장례 의식. 그랑드 므시외와 프티 피유는 이 의식을 무사히 마쳤을까요? 어쩌면 물고기는 끝내 외면하지 못한 어린 ‘나’이자, 깊숙이 묻어 둔 상처인지도 모릅니다. 마음속 어딘가 외로운 ‘나’가 있다면, 이 희곡이 조용한 위로가 되어 줄지도 모릅니다.



〈하멜린〉

후안 마요르가 지음 / 김재선 옮김


리바스 : 아무도 아이들 얘기는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진실을 원하십니까? 그 아이가 말하도록 놔두세요. 

_p.54


후안 마요르가는 익숙한 ‘피리 부는 사나이’ 전설을 무대 위로 끌어옵니다. 지역의 존경받는 리더 리바스가 아동 성추행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되며 사건은 시작됩니다. <하멜린>은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나아가 “무엇이 끝내 감추어지고 있는가?”를 되묻게 합니다.


1.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판사인 몬테로는 사건의 진실을, 피의자인 리바스는 명예를, 피해 아동 호세마리의 아버지인 파코는 체면을 좇습니다. 심리 상담사 라켈조차 아이를 상담 대상으로만 대합니다. 어른들의 욕망 속에서 호세마리는 이용되며 끝내 침묵하게 됩니다. 


‘현대 미술관, 새로운 스타디움, 연주 홀’과 같이 화려한 도시의 발전이 반복되어 언급되는 한편, 그 속에서 아이는 끝내 보호받지 못합니다. 이 모순을 통해, 아이들을 소외시키는 사회 면면을 마주하게 만듭니다.


2. ‘피리 부는 사나이’는 괴물일까?

“우리 모두 죄가 없다고 느끼고 싶어 합니다. 우리한테 괴물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는 어린 양처럼 죄가 없다고 느끼는 겁니다.” P.54


희곡의 대사처럼,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존재 자체에 의미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해지는 것.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이야기를 만든 주체는 누구일까요? 약속을 먼저 어긴 것은 도시 사람들이었지만, 사람들은 어느새 무고한 아이들을 데려간 ‘사나이’에게로 시선을 돌립니다. 죄의 방향이 교묘히 바뀝니다.


<하멜린> 속 사람들 역시 ‘리바스’를 괴물로 비난하며 자신들의 죄가 없음을 믿고 싶어 합니다. 이때 철저하게 자기 자신만을 보호하려는 어른들과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의 구조가 드러납니다. 


3. 관객을 기꺼이 ‘공범자’로 만들다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존재는 ‘아코타도르(해설자)’입니다. 후안 마요르가는 해설자를 하나의 인물로 형상화해 무대 위에 등장하게 합니다. 


“어떤 게 피리 부는 사나이의 음악일까요? 누가 들어 보셨나요?” p.97

해설자는 인물과 사건을 설명하다가 돌연 관객을 향해 묻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사건 속으로 끌려 들어갑니다. 동시에 한 걸음 떨어져 또 다른 ‘하멜린’일지 모르는 지금의 사회를 바라봅니다. <하멜린>은 한 사건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무엇을 외면하는지 묻습니다. 사회 속에서의 침묵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요? 물음을 붙잡아 보고 싶다면, 이 희곡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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