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間지〉 2026 여름호 | 대담
2026년 7월 개막을 앞둔 연극 <송화가루>의 창작진을 만났습니다.
실제 인터뷰를 바탕으로 쌓아 올린 깊은 울림의 서사부터 무대 위 생생한 훈련 비하인드까지, 작품의 기획 의도와 창작 과정에 담긴 뜨거운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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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 작가, 이유진 대표(극단 춤추어라 빨간 구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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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지(지만지드라마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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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지 편집자 <송화가루>를 활자로 먼저 만나 보고, 이 역동과 생동의 스포츠 드라마가 무대 위에서는 어떤 그림으로 펼쳐질지 몹시 기대되었습니다. 먼저 작품의 주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데요. ‘스포츠’라는 역동적인 장르와 ‘탈북한 인물’이라는 서사가 결합한 지점이 신선합니다. 두 이야기가 만나는 지점이 어디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최재영 작가 이 작품의 초기 구상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이 있습니다. 축구 경기 후반전, 선수들이 가장 지치고 힘을 짜내야만 하는 그 시간에 갑자기 자기의 내면 깊숙한 곳에 감쪽같이 감춰져 있었던 어떤 기억들이 떠올라 축구 경기와 그 기억들이 겹쳐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송화가루’의 씨앗과 같은 장면입니다. 그 장면에서 출발한 것들이 점점 구체적인 인물과 장면들로 뻗어 나갔습니다. 그만큼 축구가 이 작품의 중요한 축입니다. 특히 ‘여성’ 청소년들이 축구장과 훈련장에서 땀 흘리며 뛰고 공을 주고받고 거친 호흡을 뱉어 내는 스포츠 연극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우리 배우들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축구 훈련을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공연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축구가 우리 모두에게 조금씩 자라났습니다. 축구선수들과 축구 경기에 더 애착이 가고 그들이 그라운드에서 상대 선수들과 경합을 펼치는 역동적인 순간들을 더 잘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탈북민들을 인터뷰하고 만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분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며 이분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쌓일수록 이분들에 대한 마음이 더 깊어졌습니다.
‘송화’는 탈북민입니다. 그리고 축구선수입니다. 송화는 어린 시절부터 프로축구선수가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축구는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호흡을 맞추고 협력해야만 하는 스포츠입니다. 동료들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를 이해해야 합니다. 지난해 9월, 통일부에서 ‘탈북민’이라는 용어의 대체어로 ‘북향민’이라는 용어를 채택했고, 올해 3월에는 공식 영어 표현으로 ‘North Korean-born citizens’을 채택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북한에 고향을 둔 사람이라는 뜻의 ‘북향민’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송화’는 두 근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이 고향이며, 다른 것도 아닌 축구에 재능이 있고 축구를 뼛속 깊이 사랑합니다.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송화’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이 ‘축구장’이 된 것은 어쩌면 저에게는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축구와 탈북인이라는 이 두 축이 이 공연을 보시는 관객분들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키는지 더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 극단 춤추어라 빨간구두야
김수지 편집자 실제 인물의 사연과 삶이 녹아 있는 작품인 만큼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이 극의 어떤 부분이 관객에게 가장 사실적으로 다가가길 바랐는지, 반대로 어떤 부분만큼은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이나 희망으로 남길 바랐는지 궁금합니다.
최재영 작가 이번 작품은 여러 탈북민들과 여성 축구인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생생한 목소리가 작품에 녹아 있는데 그중 특히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 학교인 여명 학교 교감 선생님과의 인터뷰가 작업 내내 마음에 박혀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중 한 부분은 이 작품에 편집 없이 그대로 인용되었습니다. 작가가 감히 손댈 수 없을 만큼의 무게가 담겨 있는 말이었기에 이 말이 특히 관객들에게 잘 가닿길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경계에 있는 청소년 서사를 탐구해 왔습니다. 그들의 아픔, 쉽게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과 입장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이야기를 써 왔습니다. 그렇게 실제 청소년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가 제 작품의 영혼이 되어 주었습니다. 경계에 선 청소년들을 만나다 보면 이들이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들이 하는 일에 거창한 의미를 붙이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이들을 돕고 함께 노력하는 사람들 또한 만나게 됩니다. 이번 작품에도 그런 사람의 목소리를 담고 싶었고, 교감 선생님이 그런 분입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담긴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관객분들이 알아봐 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
(꿈이나 희망으로 남기를 바라는 부분은) 극의 거의 마지막, 인물들이 저마다 자기의 생각과 꿈을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축구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말하다 보니 어려움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자신이 왜 축구를 ‘계속’하는지 말합니다. 이 말은 실은 자신들이 얼마나 축구를 사랑하는지에 대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선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골 넣을 때도 너무너무 좋지만, 패스가 연결돼서 빌드 업이 막 되는 날은 날개 달고 날아갈 것 같아요.” 이 말에 담긴 숨은 의미처럼 축구는 혼자서 하는 운동이 아니어서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두가 결국 헤어지고 만나는 과정을 반복하겠지만 송홧가루처럼 훨훨 날아 어느 곳에선가 뿌리를 내리고 또 다른 곳에서 날아온 송홧가루를 만나 커다란 숲을 이루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극단 춤추어라 빨간구두야
김수지 편집자 이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거나 좋아하는 장면을 소개해 주신다면 무엇일까요?
최재영 작가 모든 장면을 좋아합니다. 제가 쓴 인물의 대사가 배우의 몸을 거쳐 행동으로 드러나 드디어 생생함을 얻게 될 때의 희열이 있습니다. 연극을 만들기 위해 모인 배우를 포함한 모든 창작자들이 하나같은 열정으로 ‘글’을 ‘행동’으로 바꿔 낼 때의 큰 기쁨이 모여 한 편의 연극이 된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히 어느 한 장면을 콕 집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하지만 작가로서는 쓰면서 신났던 장면이 있기는 합니다. 송화와 민지가 뜨겁게 부딪치는 장면과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새힘고 선수들이 모여 신나게 떠드는 장면입니다.

ⓒ 극단 춤추어라 빨간구두야
김수지 편집자 ‘송화가루’라는 제목이 서정적이면서도 독특합니다. 이 제목에 담긴 의미를 들려주세요.
최재영 작가 이 작품은 아주 긴 시간 제 마음에 머물던 몇 가지 이미지들이 드디어 하나로 뭉쳐져 드러난 이야기입니다. 그중 하나가 소나무에서 송홧가루가 마치 폭발하듯 터져 나가는 장면입니다. 정말 불청객처럼 창틀과 자동차의 보닛을 노랗게 덮는 먼지의 출처가 그것이라는 것을 목격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본 얼마 후, 극단 예술무대 산에서 창작한 작품으로, 해외로 입양된 어떤 사람이 성인이 되어 한국에 찾아와 엄마를 찾는다는 내용의 연극을 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 연극에서 주인공이 가방을 들고 오랫동안 무대에 서 있었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송홧가루가 날리는 모습과 연극 속 그 장면이 제 안에서 어떤 화학 반응을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이 두 장면이 결합된 이야기를 꼭 써야지 하며 말로만 떠들고 다닌 지 거의 10년이 흘러 결국 이 작품 ‘송화가루’가 되었습니다.
보시는 관객과 독자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지만 동시에 먼지 같은 노란 알갱이 안에 떠나온 자리가 있고 결국 또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커다란 소나무가 될 수 있는 생명이 담겨 있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그 먼지도 자신을 떠나보내야 했던 그곳을 그리워하는 존재라는 의미를 읽어 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극단 춤추어라 빨간구두야
김수지 편집자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우리는 어딘가에 속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렇기에 어떻게 속할 수 있는가를 늘 고민합니다. 작가님은 어떨 때 ‘속해 있다’는 감각을 느끼시나요?
최재영 작가 지금은 극단의 작가 겸 연출로서, 그리고 학교의 선생으로서,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안정감과 이 소속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동시에 있습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기에 더더욱 극단 동료들과의 모든 시간과 학생들과의 모든 수업 시간에 자연스럽게 차오르는 충만함을 더 세밀하게 느끼게 됩니다.
김수지 편집자 세심한 답변 감사합니다. 극단 '춤추어라 빨간 구두야’ 이유진 대표님께서 공식 SNS의 릴스를 직접 제작하신다고 들었어요. 배우분들의 에너지가 엄청나고 아이디어가 매번 재밌어서 저도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홍보 콘텐츠들은 보통 어떻게 구상하고 제작하시는지 그 비하인드가 궁금합니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콘텐츠와 가장 만들기 어려웠던 콘텐츠도 궁금합니다.
이유진 대표 공연이 올라가기 한두 달 전부터 티저 영상부터 릴스까지 모든 홍보 계획을 미리 세워 두는 편이에요. 평소 유행하는 밈을 눈여겨보다가 공연과 연결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 재미있을 것 같은 콘텐츠를 기획하고 촬영합니다.
이번 <송화가루>는 '여자 축구부'라는 설정 덕분에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정말 많아서, 주차별로 릴스를 세 개씩 제작했어요.
가장 반응이 좋았던 콘텐츠는 '소문의 낙원'이었습니다. 새롭게 호흡을 맞추게 된 객원 배우들과 무언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기획했는데, 마침 비까지 내린 덕분에 낭만적인 영상이 완성됐고 많은 관심을 받았던 것 같아요.
연습 시간을 쪼개 촬영해야 했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간단하게 찍을 수 있으면서도, 촬영하는 저희도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위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어려웠던 콘텐츠는 없었던 것 같아요. (웃음)
릴스가 공연 홍보에 직접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같은 업계 종사자뿐 아니라 연극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저희 단체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즐겁게 만들고 있습니다.
김수지 편집자 여명 학교, 여자 축구부, 그룹홈 등 창작을 위해 밀도 높은 인터뷰 과정을 거치셨다고 들었습니다. 배우분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구체화하고 살을 붙여 나간 과정을 들려주세요. 취재하며 들었던 이야기 중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순간이 있었나요?
이유진 대표 배우 전원이 인터뷰를 위해 만났던 분들 그 자체가 되기 위해 말투뿐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까지 닮아 가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제가 맡은 ‘송화’라는 인물은 어렸을 때 탈북을 했지만 기억이 전혀 없고 숱하게 거짓말을 하는 인물이에요. 인터뷰에 참여해 주셨던 한 분께서 “전에는 탈북 과정이 기억 안 난다고 했었는데 아마 말하기 싫어서 그랬을 거예요. 그때는 뭔가 숨기고 싶었고,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라고 말씀해 주셨던 적이 있어요. 이 이야기가 기억이 안 난다는 감각은 무엇이고, ‘송화’는 왜 거짓말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일말의 해답이 되어 주었고, ‘송화’라는 인물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어요.

ⓒ 극단 춤추어라 빨간구두야
김수지 편집자 축구 장면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무척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이 장면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과 즐거웠던 때가 궁금합니다. 송화를 비롯해 새힘고 축구부원들이 어떤 혹독한 훈련을 거쳤을지…
이유진 대표 먼저 체력을 기르기 위해 주 4회 단체 러닝을 하고, 주 1회 축구 훈련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팀원들 모두 기본 체력이 워낙 좋아서 축구 훈련 자체를 혹독하게 느끼진 않았을 것 같아요.
오히려 저희를 가장 힘들게 하면서도 즐겁게 했던 건 '공은 둥글다'는 사실 자체였습니다. 아무리 연습해도 공은 어디로 굴러갈지 예측할 수 없고, 늘 변수가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바로 그 예측 불가능함 덕분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팀원이 연습 경기에서 멀티 골을 넣기도 하고, 모두가 두세 배 더 기뻐하는 순간들이 생겼습니다.
무대 위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예측할 수 없는 공은 배우인 저에게는 늘 부담이지만, 그만큼 관객들에게는 더 흥미롭고 생생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김수지 편집자 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역동적인 관전 포인트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유진 대표 배우 중 한 사람도 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 이 뜨거움은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수지 편집자 벌써 인터뷰가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아쉽게 본 작품에는 담지 못했지만, 사전 리서치 과정에서 창작진 모두의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순간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최재영 작가 ‘수원 FC위민’과 북한의 ‘내고향녀자축구단’의 AFC 4강전 경기를 이번 공연의 동료들과 다 함께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응원단이 흔들던 커다란 깃발, 함성, 북소리 그리고 그 폭우 속에서도 모든 선수들이 뜨겁게 달리던 광활한 그라운드를 작품에서 언급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특히 경기가 끝나고 응원단을 향해 인사하며 보여 준 뜨거운 눈물(지소연 선수의 통곡에 가까운 눈물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김수지 편집자 극장에 오기 전 관객들이 어떤 기대를 품고 오기를 바라는지 들려주세요.
최재영 작가 ‘뜨거운 축구 그라운드의 열기를 보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수지 편집자 연극 <송화가루>를 한 단어나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무엇일까요?
최재영 작가 “내가 여기에 있는 거, 기적이라고.”
김수지 편집자 새힘고 여자 축구부가 남자 중학교 축구부와의 대결에서 완전히 깨지며 극이 시작되는데요, 축구가 팀 스포츠인 것처럼 연극도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장르라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만약 팀 전체가 단체로 슬럼프에 빠진다면, 이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최재영 작가 길게 길게 함께 걸으며, 길게 길게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