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는 1898년 뮌헨에서 기차로 30분 떨어진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과학기술 발달로 현대 문명이 전환기를 맞이한 20세기였다. 아버지는 공장장이었다. 브레히트는 어린 시절에 대해 부유한 가정에서 “시중을 받으며 자랐다”고 회고한다. 남부러울 것 없던 유년기를 보내고 청년이 된 브레히트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노동자의 삶, 고도로 발달한 기술과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심화하는 빈부격차에 주목하게 된다. 이 모순이 어디서 비롯된 건지 브레히트는 알지 못했다.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초기 희곡 <바알>, 시집 <가정 기도서> 등에 보이는 극단적 현실 부정은 그런 혼란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다 마르크스를 만난다.


1926년부터 1930년까지, 베를린으로 이주한 브레히트는 청년들의 우상으로 부상한 마르크스의 글을 탐독했다. 


온 힘을 다해 인류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택한다면 우리는 초라하고 제한된 이기적인 기쁨을 향유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행복이 수백만 명의 행복이 될 테니까.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전 인류가 행복하길 바란 철학자였다. 브레히트는 마르크스에게서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극복할 방법을 찾았다. 마르크스주의가 세계의 모순을 교정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는지 모른다. 브레히트는 “나의 계급을 떠난다”고 선언한 뒤 마르크스주의식 역사 발전 과정에 동참하기로 한다. 이때의 각성이 브레히트만의 문학, 연극 세계를 이루는 데 토대가 된다.


그 무렵 독일 연극은 도전에 직면했다.

1920년대 독일은 제1차 세계 대전 발발과 패망, 혁명이라는 세계사적 사건을 내리 겪었다. 연극은 변화 기로에 있었다. 어느 때보다 훌륭한 배우들이 많았고 쟁쟁한 연출가들이 경쟁하며 팽팽한 긴장을 형성했다. 동서고금의 주요 문학 작품들이 무대화되었다. 하지만 독일 사회의 급진적 발전은 무대에서 재현되지 못했다. 연극계는 격변의 사회상을 무대에 올리려는 열망으로 들끓었다. 새로운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려는 다양한 시도 가운데 연기 테크닉, 무대 디자인, 극작법 등에 혁신이 이루어졌다. 피스카토르는 전기 장치가 도입되기도 전에 연극 무대에서 영화를 상영했다. 전쟁 중 행진 장면을 효과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컨베이어를 활용하거나 무대를 수직으로 움직이도록 개조하기도 했다. 역사학자와 사회학자 등 전문가가 연극 제작에 참여했고 새로운 연기 기법에 대한 배우 교육도 진행되었다.


브레히트가 무엇을 어떻게 연극적으로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결론을 얻은 것도 이때였다. 기술과 이론 면에서 연극은 더욱 고도화되었고 그 결과 연출 기법은 미묘하고 복잡해졌다. 사건을 단순하게 묘사하면서도 관객에게 그 너머 방대하고 구조적인 사건의 본질을 제시할 수 있었다. 브레히트 역시 방대하고 복잡한 사건을 최소한의 표현 수단으로 묘사했다. 학습극은 브레히트의 이런 연극적 시도가 응집된 대표 사례다.

브레히트는 문학, 연극의 교육적 측면에 주목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줌(모사)으로써 독자, 관객이 현실을 더 객관적으로, 더 깊이 이해하고 스스로 극복 방안을 찾길 원했다. 그러면서도 연극이 학교, 교사가 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연극이 관객을 가르치려 해선 안 된다. (...) 연극의 일차 목표는 어떻게 관객을 즐겁게 해 줄수 있는가 하는 것이며, 그 이상 유용한 것을 관객에게 가르쳐선 안 된다. (...) 연극은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용적인 사회 모사’를 하나의 유희로 만들어 놓는다. 연극은 문제 해결로부터 지혜를 얻고, 피지배자에 대한 동정을 유익하게 분노로 바꿀 환경을 만든다. (...) 연극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생소화 효과나 서사극 기법 같은 브레히트가 정립한 연극 개념은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계기”를 무대에 마련하려는 시도이자 노력이었다. 그에 따르면 연극은 우선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내야 한다. 관객이 현실을 깨닫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연극의 궁극적인 목적은 즐거움이다. 연극에 참여하는 모두가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브레히트는 연극이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면 연극에 참여하는 모두가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는지 모른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의 슈베이크

브레히트는 ‘높은 차원’ 장면에서 실물보다 확연히 크거나 작은 꼭두각시를 히틀러와 그 부하들로 등장시켜 그로테스크한 효과를 거둔다. ‘높은 차원’의 세계와 술집을 배경으로 슈베이크 등 소시민이 등장하는 ‘낮은 차원’의 세계가 교차할 때 사실주의와 그로테스크가 만난다. 두 세계는 서로를 생소화하며 거리감을 드러낸다.
히틀러는 부하들과 지구본 앞에 앉아 있다. 그가 정복 계획을 말하면서 지구본에 손을 얹으면 그 자리에 피 얼룩이 번진다. 인형 같은 인물들이 지구본을 가운데 놓고 앉아 지구를 정복한다. 세계 정복 전쟁이 인형 손에서 계획되고 수행된다.
히틀러의 관심사는 작은 사람들, 즉 보통 사람들이 전쟁을 지지하느냐 하는 것이다. 소시민 계급의 지지를 얻어 정권을 장악한 그로서는, 더구나 확전을 계획 중인 상황에서는 소시민의 지지가 절실하다. 전쟁을 수행할 군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낮은 차원에서는 권력 하수인들이 작은 사람 위에 군림한다. 작은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유, 특히 정치적 자유를 포기하고 침략 전쟁을 묵인한다. 한편 기업가는 전쟁을 기회 삼아 주머니를 채우는 데 급급하다. 군수 산업은 국가 경제를 일으키고 일자리를 제공한다. 작은 사람들에겐 일자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기업가는 물론 스스로 침략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무비판적인 사업 확장은 결국 물신주의의 발로이고 물신주의는 다시 전쟁을 부추기는 원동력이 된다.
정복욕, 권력욕이 높은 차원을 지배하고 낮은 차원에서는 조금 더 편안한 삶을 누리기 위해 높은 차원의 권력욕에 적응한다. 의식 있는 사람들도 신변 안전과 좀 더 편안한 삶을 위해 비판을 삼간다.
술집 ‘술잔’의 주인은 나치와의 충돌을 피하기 바쁘다. 장사를 계속하려면 정치 상황에 눈감을 수밖에 없다.
높은 차원’과 ‘낮은 차원’은 극 막바지에 서로 만난다. 러시아 정복을 위한 행군길, 눈보라 속에서 슈베이크와 히틀러의 역사적 만남 장면이 전개된다. 집으로 돌아가자는 슈베이크에게 사면초가의 히틀러는 “국민들이 있기 때문에 집으로도 도아갈 수 없다”고 한다. 슈베이크는 히틀러를 향해 “쏘아야 할지(schieBen)”, “싸 갈겨야 할지(scheiBen)” 모르겠다고 말한다.
 미완성으로 끝나는 하셰크의 원작 소설과 달리 브레히트의 〈제2차 세계 대전 중의 슈베이크〉는 비사실과 사실의 중간에서 끝나며 1943년에 일찍이 러시아 전선에서의 독일 패전과 히틀러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슈베이크 : 집으로 가는 게 어때요? 그건 그래도 의미 있는 일이지 않겠어요?

히틀러 : 거긴 내 독일 국민이 있어. 난 갈 수 없어.


히틀러는 빠른 동작으로 사방으로 왔다 갔다 한다. 슈베이크는 휘파람을 불어 계속 히틀러를 부른다.


히틀러 : 동쪽으로! 서쪽으로! 남쪽으로! 북쪽으로!

슈베이크 : 당신은 여기 있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요.


히틀러의 사방으로 왔다 갔다 하는 행동이 더 빨라진다.


슈베이크 : (노래하기 시작한다.)

그래, 너는 돌아갈 수도 없고 앞으로 나갈 수도 없다.

위로는 파산이고 아래로 가면 끝장이지.

동풍은 차갑고 네가 선 땅은 뜨겁지.

솔직히 말하면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널 쏘아야 할지 싸 갈겨야 할지.


히틀러의 절망적인 발작은 사나운 춤이 된다.


173∼175쪽




빵집

〈빵집〉은 브레히트의 미완성 희곡 열 편 중 하나다. 1929년 베를린에 몰아닥친 경기 침체와 경제 위기, 대량 실업 문제를 다루고자 브레히트가 의욕적으로 집필하기 시작했으나 결국 완성하지 못했다. 중심 줄거리는 ‘일곱 아이를 키우는 과부 니오베 크베크’ 이야기다. 이 부인이 자본가에게 약탈당하고 결국 호텔에서 몸을 파는 여자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 처음 브레히트가 구상했던 전체 줄거리 흐름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자본가에게 수탈당하는 과정만 묘사된 채 희곡은 미완으로 끝나고 말았다. 〈빵집〉은 브레히트 ‘서사 연극’의 이론적 바탕이 가장 잘 드러난 희곡이다. 수많은 유형의 실업자가 등장하는데, 브레히트는 이들을 ‘표현주의’ 방식으로 묘사하려 했다. 브레히트 서사극 이론과 ‘생소화 효과’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여 주는 게 바로 1958년 브레히트 사후 잡지 《의미와 형식(Sinn und Form)》에 공개된 ‘과부인 니오베 크베크 부인의 목재’와 ‘빵으로 싸우는 전투와 워싱턴 마이어의 죽음’ 두 장면이다.


과부인 니오베 크베크 부인의 목재 


크베크 부인 : (빵집 앞에서) 난 집세가 밀려 있는 과부 크베크입니다. 집주인인 제빵사 마이닝거 씨를 위해 여러 가지 심부름을 합니다. 작은 심부름을 해 주고 일곱 명의 어린아이들과 내 생계를 유지하죠. 왜냐하면 남편이 죽었으니까요. 그중에서도 빌헬름이 가장 생기발랄한 아이예요. 아이들이 일곱이나 되는 이유는 죽은 그 사람이 내게서 물러설 줄 몰랐기 때문이죠. 내가 허락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언제나 거침없이 자기 하고 싶은 걸 다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집으로 퇴장)


17쪽



빵으로 싸우는 전투와 워싱턴 마이어의 죽음


(마이어는 경찰의 머리통을 두 번이나 더 때린다. 경찰은 머리를 흔들면서 작은 빵을 하나 집어 들어, 그 빵으로 마이어를 때린다.)


남아 있는 실업자들 : 그렇게 해서 워싱턴 마이어는 오늘 밤 저녁 7시에 죽었습니다. 거리에서 어떤 부인의 일로 싸움에 휘말려, 스스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가족도 친척도 집도 없습니다. 밑바닥에서 살다가 정의를 위해 다시 아래쪽으로 떨어졌습니다.

마이닝거    마이어가 죽었다! 이제 과부의 나무를 가져가도 괜찮아!


54쪽





1929년부터 1930년 사이에 쓰였지만 1956년 브레히트가 사망한 이후 1967년에야 동독에서 ‘베를리너 앙상블’ 극단이 초연했다. 한국 초연은 2004년 5월 4일부터 9일까지 문화예술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현재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극단 ‘미추’ 제작, 마누엘 루트켄 홀스트 연출로 이루어졌다. 배삼식이 한국적 상황에 맞춰 재창작했다.



2024.8.26

지만지드라마 조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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